건축가 김원씨 “인권을 생각하는 건축물 지어야”
글 박주연·사진 김문석 기자 jypark@kyunghyang.com
“건축가들이 설계비를 내는 사람의 말만 들어온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 결과 정작 그곳을 사용하는 다수의 인권은 도외시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인권이 독재정권의 억압과 재벌 착취에 대한 항거라는 원초적 단계에 머물러 있던 탓에 2차, 3차적 인권문제를 거론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건축가들이 나서야 합니다. 인권을 생각하는 건축물을 제안하고 지어야 합니다.”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집무실에서 만난 건축가 김원씨(70·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환경운동으로도 잔뼈가 굵다. 10년 전 ‘건축가의 환경선언’을 한 그는 그동안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추구해왔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인권과 건축’ 포럼을 만들면서 인권건축 운동에 나서고 있다. 매달 열리는 이 포럼에는 이윤하, 전인호, 곽재환, 한영근 건축가와 이경선, 정재용 교수 등 12명이 참여해 ‘인권건축’ 이론과 매뉴얼을 다듬고 있다. 김씨는 “많은 건축가들을 포럼에 참여시키고 그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인권건축을 구현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광장’에서 만난 건축가 김원씨는 “건축물에 인권을 접목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김문석 기자
이들은 서울 성북구청장의 요청으로 국내 공공 건축물 중 최초로 내년 상반기께 ‘인권건축’으로 거듭나는 안암동 주민센터 재건축에도 감리단으로 참여 중이다. 기존 권위적 청사 대신 평등·소통·배려를 기본 모토로 주민 모두가 주인인 새 공간들을 구현 중이다. 김씨가 인권건축에 눈을 뜬 건 41년 전 네덜란드 유학 시절이었다. 그곳에서 교육실험 중인 한 초등학교를 견학하면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학교는 커다란 창고처럼 전체 공간이 확 트여 있었고, 아이들은 그룹을 지어 그림, 악기, 구연동화 등을 하고 있었다. 지각 개념도 없어 늦게 도착한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그룹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칸칸이 나눠진 교실들로 이뤄진 한국의 학교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는 “일본을 답습한 한국의 학교건물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좋게 설계된 것이라면, 네덜란드의 그 학교는 아이들의 자유와 창의력을 존중한 형태였다”고 말했다.
병원과 교도소도 예로 들었다. 수술대 위에서 환자는 자신이 고깃덩어리처럼 취급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환자를 배려하지 않은 수술실 환경 탓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게 숲이냐, 콘크리트 건물이냐에 따라 환자의 회복속도도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교도소들은 재소자들이 도망 못 가게 하는 데만 중점을 둬 설계돼 창이 없거나 꼭대기에 작게 만든 게 전부”라며 “인권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설계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지에서 이주해온 도시민들은 유랑민과 같아 외롭고 불안하다”며 “지자체장과 건축가가 도시계획이나 건축을 할 때 인권을 신경 쓰면 시민들은 좀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내년께 뜻을 같이하는 건축가들과 ‘건축가의 인권선언’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