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끝없이 쏟아지던 빗줄기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수목원은 야트막한 물안개와 촉촉하게 젖은 풀잎 사이로 맑고 청아한 바람이 불었다. 마침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도심 속 비밀 정원이 나타났다.
서울의 끝자락에서 자연을 마주하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최근 개방된 이곳은 서울의 서남쪽 항동에 자리한 푸른수목원. 국내 최초 시립 수목원으로 그 규모가 10만 3천㎡에 이른다. 서울광장의 8배가 넘는 크기다. 이 넓은 부지에는 1천7백여 종의 다양한 식물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목원 길을 걷다 보면 잿빛 세상에 일그러졌던 몸과 마음이 저절로 정화되는 듯하다. '진짜 이곳이 서울이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거 서울시 구로구 항동 지역은 숲을 찾아보기 힘든 메마른 땅이었다. 도시 전체에 무허가 건물과 판자촌이 즐비했고, 유난히 공단 건물이 밀집돼 삭막한 분위기였다. '항동'이라는 지명이 어색한 것도 그 때문이다. 주민들과 공단 근로자를 제외하면 일반 시민들이 이곳을 찾을 만한 이유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각고의 준비를 통해 천왕산과 인접한 항동의 훼손된 경관을 복원했고, 저수지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각종 테마원을 조성하며 지금의 푸른 수목원을 만들었다.
▲ 그윽한 꽃향기가 사방에 퍼지는 '달록뜰'. 일명 장미원으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형형색색의 장미꽃들을 만나볼 수 있다.
푸른수목원, 제대로 알고 즐기기
푸른수목원은 25개의 콘셉트를 가진 테마 식물원으로 취향에 따라, 동행인에 따라 테마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우선 수목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드넓은 잔디 광장인 '푸른뜨락'이 낯선 방문자를 반겨준다.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 그곳에 앉아 잔잔한 저수지를 바라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푸른뜨락을 지나면 수생식물원인 '가람자리'가 펼쳐진다. 이곳은 수생식물과 각종 어류, 양서류가 공생하는 친환경 공간. 특히 탐스럽게 꽃망울을 터뜨린 수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수목원의 하이라이트는 70여 종의 장미꽃이 만개한 '달록뜰'. 유럽풍의 이국적인 분수와 하얀색 정자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서로 다른 화려한 색채의 장미꽃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또한 푸른수목원 곳곳에는 얕은 시냇물이 흐른다. 그 길이가 약 1㎞에 달해 수목원 전체를 두루 걸치며 빗물을 받는 역할을 하고, 이렇게 모은 빗물은 저수지로 옮겨지는데 시냇물 위 앙증맞은 돌다리가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수목원 뒤쪽에는 영화 < 건축학개론 > 을 연상시키는 낡은 철길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항동 철길로 불리는 곳으로,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7㎞의 단선 철도이며 간간히 화물 열차만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
이 밖에도 푸른수목원에서는 텃밭, 프랑스 정원, 메타세쿼이아 길 등 저마다 독특한 콘셉트의 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 북 카페, 가든 카페, 정자 같은 크고 작은 쉼터도 많아 언제든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수목원 전체에 느릿한 음악이 흘러나와 여유롭게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다양한 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푸른수목원은 '생태의 섬(Eco-Island)'으로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힐링 명소로 거듭날 것이다.
1 항동 저수지의 전경을 즐길 수 있는 '푸른뜨락'. 울창한 갈대숲과 줄지어 헤엄치는 아기 오리 등 볼거리가 많다.
2 마치 미로 같은 나무 데크 길이 얽혀 있는 '가람자리'. 요리조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촉촉한 물빛을 머금은 수생식물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3 10m가 넘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한껏 고개를 들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도시를 떠나지 않고도 메타세쿼이아 길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많은 곳이다.
4 정식 명칭은 'KB숲교육센터'이며, 수목원 내 유일한 온실 식물원이다. 전체적으로 건물이 초승달의 형상을 띠었으며, 전 세계 6개 대륙에서 온 외국 식물들이 살고 있다.
가는 길
버스 이용 시_ 6614번 버스 탑승 후 저수지 삼거리(푸른수목원 후문) or 건널목 삼거리(푸른수목원 정문)에서 하차
지하철 이용 시_ 1·7호선 온수역 3번 출구에서 도보 20분 or 구로07번 마을버스 탑승 후 항동 저수지 삼거리에서 하차
자가용 이용 시_
서부간선도로(안양 방면)→경인로(부천 방면)→고척교 교차로에서 부천 방향으로 4.6㎞ 진행→성공회대학교에서 좌회전 900m 지점→푸른수목원 주차장 이용(10분당 300원)
위치 서울시 구로구 항동 연동로 240 문의 02-2686-3200
입장료 무료 운영시간 오전 5시~오후 10시
진행_이미혜 기자 | 사진_최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