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4) 한완상 전 통일 부총리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ㆍ“박근혜, 북에 특사 보내 천안함 문제 풀어야… 금강산 관광 재개를”
ㆍ“정전 60주년… 한·미동맹 유지하며 한·중관계 강화 균형 맞춰야”
한완상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은 “박근혜 당선인이 아버지의 유신체제 유산을 털어내고, 이명박 정부 5년의 대북정책 문제점을 잘 극복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더 평화지향적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박 당선인은 ‘종북좌파’라고 욕먹을 일이 전혀 없으므로 과감하게 할 수 있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이제 대북 ‘퍼주기’ 때문에 북한이 인공위성을 띄우고, 핵실험 한다는 얘기를 할 수 없게 됐다”며 “미국과 한국의 북한 압박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관계를 경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북한과 협력한다면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에 기여함은 물론 국민으로부터도 새 정부가 중소기업을 살리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완상 전 부총리가 2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북 붕괴시킨 뒤 흡수 궁리만
MB 정부 대북정책은 50점… 미국까지 실패하게 만들어
▲ 실패한 강경 정책 계승 말고
박근혜 정부, 새로운 접근을… 과감히 평화 지향으로 가길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후보에게 힘을 보태셨는데 결과를 평가한다면.
“ ‘멘붕(멘털 붕괴·낙담해 정신을 차리지 못함)’에 빠져 고생하는 많은 국민들께 위로 드린다. 멘붕이 개인의 정서적 불안정이나 좌절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역사와 구조의 좌절로 보기 때문이다. 이럴 땐 남을 탓하기보다는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 보수세력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속속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새누리당 박근혜 전 후보와 지지세력에게 ‘이러다간 보수의 집권이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상대 후보를 친북좌파라고 색깔론으로 몰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간 종북좌파라는 문화적 딱지를 붙이기 위해 언론세력을 재편했다. 지상파를 완전히 장악했고, 케이블에 종편 진출을 허락했다.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이라는 사회정치적 의제를 설정하는 종이신문이 강화됐다. 그래서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효과적이었다. 이게 보수의 승리 전략 중 하나였다.”
-민주당의 대응과 캠페인은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당은 4월 19대 총선 때 무사만루 찬스를 만들어줬는데, 안타 하나 못 쳐서 무산됐다. 친노(친노무현)·비노·반노 세력들 간의 아름답지 못한 내출혈이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심지어 일부 친노 쪽도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그런 게 국민에게 별로 호감을 못줬다. 단일화 과정에서 감동적 요인이 없었고 오히려 국민을 피곤하게 했다. 문재인 후보의 실수는 마지막 단일화 문안을 놓고 줄다리기하면서 통 크게 양보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문재인 후보 지지모임인) 담쟁이포럼 대표로서 ‘양보해야만 이길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게 안됐다. 당이 지리멸렬했는데, 48%라도 얻은 것은 문재인씨가 가진 인품 덕분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해달라.
“점수로는 50점을 주고 싶다. 대개 60점이면 낙제점이지?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 통일부를 없애겠다고 해서 전직 통일장관들이 모여서 걱정한 적이 있다. ABC(Anything But Clinton·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것 빼고 어떤 것도 한다는 정책 기조)를 편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를 잘못 모방한 것이다. ‘노무현 것 빼고 다 한다’는 식으로 나왔다. 하지만 부시 2기 정부는 클린턴의 대북정책으로 돌아갔다. 참고하려면 총체적으로 봐야지 일부만 봤다. 통일부를 없애려 했던 논리가 ‘퍼주기’ 주무부처라는 거였다. 하지만 퍼주기는 없었다. 장독에 쌀이 꽉 차 있으면 쌀 몇 톨을 준다해서 퍼주기는 아니다. 되나 말로 줘야 퍼주기다. 남북협력기금을 모두 퍼주어도 전체 예산 대비 0.3% 정도다. 설령 퍼주기라 해도 남북간 평화 조성기금으로 보면 되지 않나. MB(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인내도 정책이다’라고 한 것이다. 무엇을 인내한다는 것인가. 바로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도 그런 가정을 갖고 있었다. 당시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해 비행기가 공중을 돌고 있어 위험한데, 선택은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가설을 갖고 문민정부가 5년간 대북정책을 했다. 이번 정부는 그때보다 심각하다. 어떻게 하면 북한을 붕괴시킨 뒤 흡수할까만 궁리했다. MB 자신만 실패한 게 아니고 미국도 대북정책에 실패하게 만들었다. 이제 오바마가 MB 말 들었다가 대북정책에 결과적으로 실패했구나 생각하면서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화해·포용정책은 남북관계를 진전시켰나.
“잘못한 것도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출발부터 남북관계를 잘할 수 없게 돼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적으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과 반대인 수구냉전 세력과 연합했다. 당시 총리, 외무장관, 통일장관, 비서실장의 면면으로 남북관계를 평화지향적으로 과감하게 끌어갈 수 없었다. 말은 햇볕정책이지만 암흑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많았다. 첫 2년간 북한은 햇볕정책을 더 교사스러운 흡수 통일책으로 오해했다. 1998년 4월 베이징에서 남북 차관급 비료지원 회담이 결렬됐다. 이산가족 상봉을 하면 비료를 주겠다는 선후 논리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어 대포동 미사일을 쏘고 헌법을 개정해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강경하게 나왔다. DJP라는 한계 때문에 자기 철학대로 정책을 펴지 못했다. 그렇게 2년 세월을 보내면서 햇볕정책의 국제적 효과를 보는 데도 한계를 보였다. 클린턴 정부 후반기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조명록 차수의 교환 방문 뒤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에 가려 했는데 부시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결국 가지 못했다. 1998년 비료회담만 잘 풀렸어도 햇볕정책이 국제적으로 꽃필 가능성이 더 컸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DJ가 뒤늦게 집권 3년차에 이것을 깨닫고 보수적 인사들을 방출했는데, 이미 늦었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어떻게 보는가.
“노무현은 보수진영에 빚진 것 없이 대통령이 됐다. 후보 시절에는 ‘미국 사람들에게 굽실굽실하지 않겠다, 한·미관계는 호혜평등관계’라고 하다가 취임 직후 미국을 방문해 해괴한 말을 했다. 미국인들을 기분 좋게 해주려 했는지 모르지만 ‘만약 여러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북한의 정치수용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관성이 없었다. 자주적인 발언을 하다가 반공적 발언도 해서 초기에는 햇볕정책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선 핵포기론에서 나중에는 ‘동시 추진’으로 또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그 후 본격적으로 햇볕정책을 펼치면서 2007년 10·4 선언을 도출했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늦었다. DJ는 임기 중반에 해도 국제적 효과를 내기에 늦었는데, 노무현은 임기 말에 했다. 10·4 선언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결과인) 6·15 선언보다 더 각론적이고 구체적이다. 북한 최고지도자 공식 문서로 ‘통남’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셈이다. 휴전협정 서명에 이승만 대통령이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평화체제 논의에 들어갈 수 없게 돼 있었다. 그런데 10·4 선언은 평화체제의 두 주요 당사자를 남북한으로 하고, 그 다음에 3자 또는 4자로 한다고 했다.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드는 데 북한이 ‘봉남’에서 ‘통남’으로 바꾼 획기적 문건이다. 노 대통령은 이 문건을 만들고 넉 달 뒤 퇴임했다. 새로 들어온 이명박 정부는 그걸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노무현 정부도 햇볕정책을 반짝반짝 빛나게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성공시킨 셈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체제가 1년을 맞았다. 김일성·김정일 체제와 비교한다면.
“김정은 제1비서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본따려고 하려는 것 같다. 스타일뿐만 아니라 본질을 배우려 하고, 할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동일시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더 인자하고 스케일이 컸다. 할아버지 소망을 단순하게 말하면 ‘기와집에 비단 옷 입고 이밥에 고깃국 먹이는 것’이다. 얼마나 평이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얘기인가. 한마디로 경제 얘기다. 김정은이 이번 신년사에서 말한 게 경제가 어렵다는 걸 시인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풀려 하다 보니 막히는 게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다. 남측, 미국과 긴장·대결 관계를 종식시켜야 할아버지 꿈을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뜻으로 보였다. 김정은은 1년 만에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못한 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1년 만에 군부와 국민들의 신뢰를 얻은 것 같다. 고모부 장성택씨, 고모 김경희씨의 후견도 든든하고, 권력 기반을 1년 내에 상당히 장악한 것 같다. 그래서 여유 있게 경제회복 쪽으로 초점을 바꾸려는 것 같다. 신년사에서 그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것은 내부적 자원이고 외부적 자원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개선에서 나온다. 미국과 관계 개선을 못하고는 ‘이밥에 고깃국 먹는 꿈’을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이 고깃국이 아니라 나물국이라도 제대로 먹이려면 미사일과 핵 개발에 드는 비용을 민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이제 ‘퍼주기’ 때문에 북한이 인공위성, 핵실험을 한다는 얘기를 할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지난 5년간 미국과 한국이 줄기차게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한 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더 강경하게 나오게 했다는 점, 즉 압박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에 대해서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MB 정부는 북한을 목 조르고 고립시키면 항복할 거라고 봤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미국은 MB의 대북정책 내용, 철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켜보며 지지해줬다. 그런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북한을 중국처럼 스스로 개방과 변화의 길로 나가도록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북한 당국의 가장 큰 두려움을 해소해줘야 한다. 그 두려움은 러시아나 중국, 일본에서 오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 온다. 미국 핵잠수함은 항상 태평양, 심지어 서해 근처로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5월26일 경기 파주시 도라산관측소에서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또렷하게 건너다보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철원에 제2의 개성공단 조성, 원산·시베리아 철도 연결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양쪽 모두 인권상황도 악화
인구 8000만·소득 2만달러… 남북 협력하면 세계 5대 강국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DJ, 노무현은 미국에 ‘당신들이 북한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문제가 풀린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다른 보수 대통령들은 북한을 옥죄어서 붕괴시켜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실패한 강경정책을 계승하지 말아야 한다. 당근과 채찍을 효율적으로 구사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당근도 채찍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YS 때 미국은 일괄타결 같은 당근을 통해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자는 입장이었다. 당시 정부 내 냉전수구 세력들은 끝까지 반대했다. YS는 민주투사로서 대통령이 돼 클린턴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음에도 클린턴 정부의 일괄타결을 반대했다. 북·미가 만날수록 질투를 느끼고 미국을 뒤에서 잡아 끌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레이니가 내 친구여서 잘 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는 경수로라는 참 좋은 당근이 들어 있었다. 경수로를 가동해도 사용후연료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플루토늄이 별로 추출되지 않는다. 건설 과정에서 북한이 필요한 중유를 주기로 했다. 제네바 합의에는 북·미 간 관계 정상화 조항까지 들어가 있다. 하지만 합의에 담지 않았던 미사일과 우라늄 농축 문제로 합의가 깨졌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적이 없다고 항상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쪽은 중유 지원도 중단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는 근처에도 못 갔다. 그게 과연 당근을 준 것인가. 그나마 YS 정부는 당근 주는 것에도 반대했다. 결국 제네바 합의도 휴지 조각이 됐다. 그렇다고 채찍을 제대로 쓴 것도 아니다. 또 심각한 채찍을 쓸 수도 없다. 6·25 전쟁을 통해 가공할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도 남북 간 무력충돌을 한다고 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렇게 엉거주춤하다가 남북관계는 망가졌다. 이제 총체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기본자세는 역지사지다.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DJ,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 대해 했던 것보다 더 깊이 역지사지하면 좋겠다. 오히려 보수정부가 그런 점에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아버지 유신체제의 유산을 털어내고 MB의 5년간 정책을 다 극복해서 DJ, 노무현보다 훨씬 더 평화지향적으로 나갈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종북좌파’라고 욕 먹을 일이 전혀 없으므로 과감하게 평화지향으로 나갈 수 있지 않겠나.”
-박근혜 당선인은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적도 있지 않나.
“내가 정부 안팎에 있을 때 북한 요직자들에게서 ‘장군님(김정일)이 박근혜씨를 만나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없느냐’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두 사람은 2002년 결국 만났다. 이제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그때 김정일과 나눈 얘기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유훈통치’를 존중하는 북한 체제가 바라는 게 뭔지 박 당선인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만 나눈 얘기가 있을 것이다. 박근혜씨가 민주당보다 냉전수구 세력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에서 더 자유로우니까 더 과감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반대한 48%도 그의 과감한 평화정책에 박수를 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5·24 조치(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 교류 중단조치)를 풀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결국 천안함·연평도 문제가 해결돼야 하지 않나.
“5·24보다 더 쉬운 게 금강산 관광 재개다.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잘못했다고 얘기했다. 북한의 하나님 같은 사람이 현대 회장에게 사사롭게 얘기했겠는가. 공적인 기구의 장에게 ‘우리가 잘못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쓰겠다’고 했으면 공식 사과로 받아들여도 된다. 이명박 정부가 그걸 안한 것은 냉전적 협량함이다. 박근혜씨는 통 크게 할 수 있다. 강원도 고성 지역의 망가진 경제도 좀 살려내야 하고, 북한도 정신 차려서 다시는 그런 짓을 안하게 해야 한다. 천안함 문제를 기술적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이 문제로 중국·러시아·북한이 한편이 되고 있기에 남북관계를 냉전적 3각동맹 대립으로 악화되지 않는 차원에서 지혜롭게 이끌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천안함 문제만 다루는 특사를 보내서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걸 바라는 것 같지 않다. 천안함의 진실은 나도 잘 모르지만 의문을 표하는 상당수 전문가와 국민이 있다. 이데올로기 차원이 아니라 민족복리, 공존공영의 차원에서 경제적 측면을 볼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 덕분에 우리도 도움되고, 당신들도 도움되지 않느냐’ 그렇게 하면서 푸는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를 깊이 한 사람이니 만나보고 싶어할 것이다. 그걸 공식회담으로 하면 시끄러운 만큼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기 위해 조용한 외교를 한 것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를 무엇을 통해 어떻게 이끌어가는 것이 좋은가.
“이번 대선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가 부각되지 않았다. 주로 경제문제였다. 경제문제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봐야 한다. 경제·민족 공동체 차원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서 국가연합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남북 간 경제공동체로 나타나야 한다. 10·4 선언은 6·15 선언의 총론적 합의를 각론적, 실용적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실무진을 구성해 북한과 10·4 선언의 경제적 협력 프로젝트를 더 효과적으로 실천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을 인수위 때부터 고민했으면 좋겠다. 5년 전 MB가 통일부를 폐지하려 해서 실패했던 것과 달리 남북관계에서 현실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개성공단 같은 걸 철원에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그 공단에 북한 노동자가 오고, 경쟁력을 상실한 우리 중소기업이 진출할 수 있다. 그것이 금강산 관광과 이어지고 원산까지 철도도 이어진다면 시베리아로 뻗어나가기도 쉽다. 시베리아 가스를 가져와야 에너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휴전선이 단순히 이념적, 지리적 단절뿐만 아니라 우리 청년들로 하여금 뻗어나가는 문화적, 학문적 기세, 창조적 기운도 막고 있다. 철도로 가면 물류비용이 배나 비행기보다 절약된다. 문재인씨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것을 하려 했다. 박근혜씨라도 그것을 해주면 좋겠다. 신정부가 이런 것을 내놓으면 중소기업을 살리려고 하는구나 하는 인식을 국민에게 줄 수 있다.”
-북한인권 문제는 어떻게 하나.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남북 모두 인권 상황이 악화된다. 남북관계에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있다. 남북 양 체제의 강경세력, 즉 북 군부세력과 남 냉전수구세력이 상대방에 대해 공격적 정책을 취하면 남북관계가 악화된다. 희한하게 남북관계가 악화될수록 양측 강경세력의 기득권은 강화된다. 양 체제에서 자기 기반을 강화하려면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면 된다. 그들은 남북관계가 나빠야 정치 장사가 잘된다고 생각한다. 양 체제 속에서 강경정책으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되면 인권은 체계적으로 훼손되게 마련이다.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권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한반도 특수상황을 무시하면 인권 논의가 엉뚱한 데로 간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우호적 상생관계로 전환시켜야 한다. 북한에서는 합리적 테크노크라트가 힘을 얻도록 해야 하고, 남쪽은 합리적 개혁주의자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 합리적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게 되면 인권 문제는 구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게 북한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원칙이다. 문제는 박정희 정권에서 인권 유린이 일어날 때 보편적 잣대로 비판하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북한 인권을 보편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권이 보편적인 잣대인 것은 맞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비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도 성찰해볼 일이다. 경향신문이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민주세력이 인권 탄압을 당할 때 침묵했던 사람들이 지금 북한 인권을 지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북한에 정치범수용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생존권적 인권 문제가 심각하고, 보건 분야는 굉장히 심각하다. 다만 이걸 북한을 비난하는 차원에서 악용하는 경우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도 침묵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올해는 정전협정 60주년, 한·미동맹 60주년이 되는 해다.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우리가 한·미 간 혈맹을 강조했을 때는 중국이 우리에게 적성국일 때였다. 지금 역사가 바뀌어 미국, 일본 시장을 합친 것보다 중국 시장이 더 커졌다. 이 같이 변화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한·미 혈맹관계를 계속 강조하는 것은 성찰해볼 일이다. 한·미관계는 합리적으로 돈독해야 한다. 그런데 부시가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강행했을 때 세계 여러 나라들은 불편해했다. 우리까지 그 나라들, 특히 중국과 불편해질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하려는 정치·사회 선진국으로서 미국과의 관계 강화와,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와 협력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물론 중국도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령 동북공정이나 대국주의의 교만 같은 게 있다. 그럼에도 한·중관계는 더욱 돈독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남북관계나 한반도 주변 4강과 외교관계를 박근혜 정부는 절대 MB처럼 해서는 안된다. 정치적으로는 아버지 유산을 극복하고, 남북관계와 외교는 MB를 극복해야 한다. 박근혜씨가 복이 있다고 보는 것은 따라해서는 안될 반면교사의 두 기둥이 너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반면교사들이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교 면에서 박근혜 당선인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국제적 위상이 단군 이래 가장 높아졌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G1(미국), G2(중국), G3(일본)가 다 있다. 진보개혁적인 오바마도 미국의 아시아 회귀를 얘기한다. 동북아가 안정으로 가느냐 불안정으로 가느냐, 갈등으로 가느냐 평화로 가느냐는 한반도에 달렸다. 섬을 놓고 중·일이 다투는 것은 작은 일이다. 동북아에서 신냉전 3각동맹 대립구도가 형성될 조짐이 보이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 박 당선인은 냉전시대에 존재했던 북방 3각과 남방 3각 동맹이 다시 세력을 결집하는 조짐을 잘 인식했으면 한다. 다행히 미트 롬니(공화당 후보) 대신 오바마(민주당 후보)가 당선돼 속도는 늦춰지겠지만, 미국이 아시아 귀환을 정책으로 삼는 한 우려는 상존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에 동의하지 않은 나라에 중국, 러시아가 있다. 북·중·러는 과거 냉전 3각동맹의 핵심이다. MB가 천안함 문제를 다루면서 국제정치와 역사의 큰 시각에서 다루지 못한 측면이 있다. 북방 3각동맹은 이미 해체됐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결속할 조짐이 보인다.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해체된 뒤 한반도에 냉전구도가 남아있는 것도 가슴 아픈데, 그걸 존속·강화시키는 국제적 냉전 틀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이 더 불길하다. 천안함 사건을 미시적 차원에서 보는 것도 좋은데 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남북관계만 잘되면 G5가 될 수 있다. 인구 8000만 이상 국가 중 1인당 소득 2만달러 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미국, 일본, 독일 등밖에 없다. 남북한 인구를 합하면 8400만명이다. 우리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선진국이 될 가능성을 보이는 지금 냉전 3각동맹이 부활하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터뷰 진행 | 이중근 정치부장>
▲ 한완상은?한완상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77)은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한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한 전 부총리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70년부터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해직과 투옥을 반복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체포돼 고문을 받았고, 미 에모리대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84년 8·15 특사 때 전두환 정권에 의해 복권돼 귀국했다.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당시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초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으로 기용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 조선일보의 공격을 받아 물러났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상지대 총장과 대한적십자 총재도 역임했다. 저서로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예수없는 예수교회>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 <지식인과 허위의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