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하워드 진 스펠먼대 졸업축사(2005)

이런저런 이야기/다양한 세상이야기

by 소나무맨 2013. 7. 14. 20:44

본문

하워드 진 스펠먼대 졸업축사(2005) 낙서장

2013/06/06 10:15 수정 삭제

복사 http://blog.naver.com/tc2848/100189388856

전용뷰어 보기

출처 정석의 걷고싶은 도시, 살기좋은 동네 | 예로
원문 http://blog.naver.com/jeromeud/70132159152

1963년 하워드 진은 스펠먼대학에서 해직당합니다.  

이미 정년을 보장받은 정교수이자 역사학과 학과장이었던 하워드 진이 

교수직위를 잃게 된 이유는 '불복종'이었습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학교운영에 반발한 학생들을 지지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2005년 5월에

하워드 진은 스펠먼대학에 초대되어 명예학위를 받고 졸업식 축사를 합니다.

 

"절망에 맞서서(Against Discouragement)"라는 제목의 졸업축사 전문을 올립니다.

한글번역문은 강주헌 역,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랜덤하우스, 2008)를 따랐습니다.

 


[사진출처] 인디고 유스 북페어 2010  http://blog.naver.com/asaner/140126084389

 

[사진출처] 인디고 유스 북페어 2010  http://blog.naver.com/asaner/140126084389



[사진출처] 인디고 유스 북페어 2010  http://blog.naver.com/asaner/140126084389



[사진출처] 인디고 유스 북페어 2010  http://blog.naver.com/asaner/140126084389


[사진출처] 인디고 유스 북페어 2010  http://blog.naver.com/asaner/140126084389

 

 

절망에 맞서서((Against Discouragement) - 하워드 진(Howard Zinn)

 

42년만에 스펠먼에 돌아와 감개무량합니다.

나를 초빙해준 교수진과 이사회, 특히 비벌리 테이텀 학장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또한 다이앤 캐롤과 버지니아 데이비스 플로이드도 이 자리에 함께 해줘서 영광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여러분의 날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 여러분의 날입니다.

여러분과 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날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는 걸 압니다.

따라서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란다고 말하는 건 주제넘은 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이나 내 손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똑같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에 여러분이 지나치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라나라가 전쟁중이어서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끝내기 무섭게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고,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우리 정부가 제국주의적 야심을 드러내는 것 같아

실망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수조 달러의 국부를 전쟁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동 등에는

말라리아와 결핵과 에이즈를 퇴치할 약품과 맑은 물이 필요한 10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미 수천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훨씬 더 치명적인 핵무기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에 실망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참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실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50년 전 이곳에서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버금갔습니다.

흑인이 구타당해 죽고 투표권마저 거부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자유주의를 표방하던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을 위시한 연방정부는

모른 체 했습니다.

그래서 남부의 흑인들은 그들만의 힘으로 뭔가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불매운동을 벌였고 연좌농성을 하거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물론 구타당하고 감금당했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외치던 그들의 목소리는 곧 미국 전역과 세상 곳곳에 울려퍼졌습니다.

대통령과 의회는 수수방관하던 그때까지의 자세를 버리고

마침내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래서 헌법 14조와 15조가 시행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남부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남부도 변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조직화되고, 위험을 무릅쓰고 체제에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한 겁니다.

그때 민주주의가 되살아났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또한 어땠는지 기억해보십시오.

베트남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죽거나 불구가 되어 조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베트남 마을들을 집요하게 폭격했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파괴했고 죄 없는 보통 사람들을 무수히 죽였습니다.

그 전쟁을 중단시킬 방법이 없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남부에서 시민권운동을 벌일 때처럼 우리 국민은 저항하기 시작했고,

시위는 들불처럼 전국에 번졌습니다.

전 국민적 저항 운동은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귀향한 군인들은 전쟁을 비난하고 젊은이들은 징병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전쟁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는 절망하지 말라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옳다는 걸 확신하고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려 하고 신문과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하나의 진실이 백 개의 거짓말보다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을 해서 자식도 낳아야겠지요.

부자가 되어 우리 사회가 성공이라 규정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할 겁니다.

재산을 모으고 사회적 지위와 권위도 쌓아갈 겁니다.

하지만 '좋은 삶(good life)'은 그런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기억하십니까?

죽음을 앞둔 남자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봅니다.

나름대로 옳은 일을 했고, 규칙을 반듯하게 지키며 살았습니다.

판사가 됐고 결혼해서 자식도 낳았습니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자신이 실패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유명한 작가가 된 후 톨스토이는 소설가라는 명성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학대받는 러시아 농부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전쟁과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글을 썼던 겁니다.

 

여러분이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든,

교사가 되든, 사회운동가가 되든, 사업가, 변호사, 시인, 과학자 등 무엇이 되든,

여러분의 자식, 아니 모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여러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투자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세대는 전쟁 종식을 강력히 요구하고,

여러분의 세대는 역사에서 아직 이뤄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짓는 국경을 지워버리길 바랍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사진입니다.

멕시코를 마주보는 애리조나 남부의 국경선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오려는 멕시코인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총까지 들고 말입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진이었습니다.

문명세계라는 21세기에 입으로는 하나의 세계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을 이른바 '국가'라는 2백여 개의 인위적 단위로 잘게 쪼개고,

그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게 현실입니다.

 

하나의 국기와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국경에 매몰된 채 살상을 서슴지 않는

이런 국가주의가 인종차별, 종교적 갈등과 더불어 우리 시대를 짓누르는 해악이 아닐까요?

이런 사고방식이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세뇌시켜 권력자들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됐고,

권력 밖의 힘 없는 사람들에게는 독이 됐습니다.

 

이곳 미국에서 우리는 어떻게 배우며 자랐습니까?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예외적인 존재이고,

도덕적으로 항상 옳은 나라라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미국은 문명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들어가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여러분은 그런 주장들이 거짓이었다는 걸 배웠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이 대륙의 원주민들을 살해했고,

멕시코를 침략했으며, 쿠바와 필리핀에 군대를 파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안겨준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전파하려고 베트남에 간 게 아니었습니다.

마약거래를 종식시키려고 파나마를 침공한 게 아니었습니다.

테러를 종식시키려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게 아니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존재했던 다른 제국들과 똑같은 목적을 품었던 겁니다.

기업의 이익, 정치인의 권력 확장이 목적이었습니다.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는 국가주의의 병폐를 상대적으로 더 깊이 알고 있는 듯합니다.

예컨대 랭스턴 휴스, 조라 닐 허스턴, 리처드 라이트, 제임스 볼드윈 같은 흑인 작가들은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의 미덕에 덜 세뇌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은 걸 보건대 말입니다.

 

나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도 이른바 '좋은 전쟁'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전쟁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다른 전쟁을 초래할 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군인들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살상과 고문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전쟁은 국가의 영혼을 좀먹습니다.

 

여러분의 자식 세대는 전쟁 없는 세계에서 자라게 해달라고

여러분이 입을 모아 요구하길 바랍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형제자매로 여겨지는 세상을 원한다면,

온 세상의 아이들을 우리 자식으로 여긴다면,

전쟁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는 없습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어린아이들이니까요.

 

나는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스펠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내 마음을 훈훈하게 적셔준 시기였습니다.

그때 마음을 함께 나눈 친구들하고는 그 후로도 계속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 로즐린과 나 그리고 두 아이는 이곳 캠퍼스 안에서 살았습니다.

간혹 시내에 나가면 백인들이 "흑인들하고 어울려 사는 게 어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애틀랜타 시내에서는 이방인이란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지만,

스펠먼 캠퍼스로 돌아오면 고향에 다시 왔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펠먼에서 지낸 시절은 내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학생들이 내게 배운 것보다, 내가 학생들에게 배운 게 더 많았을 겁니다.

당시는 남부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나는 애틀랜타에서, 조지아 주 올버니에서, 엘라배마 주 셀마에서,

미시시피 주의 해티스버그, 그린우드, 이타베나, 잭슨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런 참여를 통해 나는 민주주의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민주주의는 정부, 즉 위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정의를 위해 힘을 합쳐 투쟁하는 국민의 손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인종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깨인 사람들은 알고 있던 거였지만요.

어쨌든 인종은 인위적인 구분이고, 조작된 구분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코널 웨스트가 썼듯이 백인이 중요하다면

일부 집단에서 백인이 중요하게 여겨지길 바라기 때문에 그런 것뿐입니다.

국가주의도 마찬가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서 우리 모두가 인간이며 서로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스펠먼에서 우리 학생들이 현격하게 변하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얌전하고 조용하기만 하던 학생들이 갑자기 캠퍼스를 뛰쳐나가

시내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체포되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또 풀려나 캠퍼스에 돌아와서는 분노하며 저항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해리 리퍼버의 "대담한 투쟁"에 그 얘기가 모두 쓰여 있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매리언 라이트 에델먼이 됐지만,

애틀랜타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다 처음으로 구금된 학생들 중 하나였던 매리언 라이트가

어느날 우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게시판에 게시할 거라며 탄원서를 보여주더군요.

당시 스펠먼 대학에서 일어나던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한 탄원서 윗줄에는

'시위에 동참할 사람은 아래에 서명해주십시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그 성공에 안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당한 규칙에까지 순종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감춰진 용기를 마음껏 끌어내서 행동하길 바랍니다.

 

흑백을 넘어서 우리가 귀감으로 삼을 사람은 많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콜린 파월, 클라렌스 토마스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귀감으로 삼지는 마십시오.

그들은 권력자와 부자의 하수인이 됐을 뿐입니다.

듀보이스, 마틴 루터 킹, 맬컴 엑스, 매리언 라이트 에델먼, 제임스 볼드윈, 조세핀 베이커

그리고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배집단에 도전한

훌륭한 백인을 귀감으로 삼으십시오.

 

스펠먼에서 제가 가르친 자랑스러운 제자로는 앨리스 워커가 있습니다.

매리언처럼 앨리스도 지금까지 나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조지아 주 이톤튼의 가난한 소작농 출신이지만 유명한 작가가 됐습니다.

앨리스가 처음 발표한 시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장벽을

단번에

부숴버리려 애쓰던,

앨라배마의 하얀 해변에서

발가벗고

헤엄을 치고 싶어 하던

흑인 젊은이들처럼

대담무쌍한 사람들을

나는

줄곧 사랑해왔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그렇게까지 투쟁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인종이라는 장벽과 국가주의라는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데

여러분도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걸 하라는 뜻입니다.

영웅이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뭔가를 해보려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뭔가를 해보라는 뜻입니다.

그 작은 것이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 조라 닐 허스턴의 얘기로 내 축사를 끝내겠습니다.

조라는 백인이 해주길 원하는 것도 하지 않고,

흑인이 해주길 원하는 것도 하지 않을 거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했습니다.

조라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해줬다는 조언은 이렇습니다.

 

"태양을 향해 뛰어 올라라!

태양에 닫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땅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오늘 여러분은 발가락을 곧추 세우고

드넓은 세상을 향해 도약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 영어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tomdispatch.com/post/2728/graduation_day_with_howard_zinn

 

 

2012. 2. 23. 정석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