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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유구역이 '아파트 자유구역'으로 바뀐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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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3. 6. 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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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유구역이 '아파트 자유구역'으로 바뀐 이유

[변상욱의 기자수첩] 표퓰리즘과 승진 타령만 난무 노컷뉴스 | 변상욱 | 입력 2013.03.04 10:27

 

[CBS 변상욱 대기자]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 김현정의 뉴스쇼 >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최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충북에서는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경제자유구역 사무를 관장할 경제자유구역청을 청주, 충주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다. 어디에 두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할 지 모르지만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표가 달려 있고, 공무원들에겐 승진기회(3~5급 간부 자리만 24개, 전체 정원 90 명 선)가 걸려 있고, 주민들에겐 지역 상권과 땅값 상승이 걸려 있다.

조용하다면 그것이 더 큰 뉴스일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자유구역 사업에 지원되는 국고는 15%, 지자체는 85%를 민자유치와 외국투자 유치로 메워야 하니 갈 길이 멀다. 경제자유구역이 성공할 지도 까마득한데 시작이 저러고 있다니 씁쓸하다.

◇ 정치인은 표 타령, 공무원은 승진 타령

지난 2002년 한국을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로 육성한다는 거창한 목표로 출발한 것이 경제자유구역 사업이다. 2003년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권 등 3개로 출발했고, 2008 대선을 앞두고 2차 심사가 진행돼 새만금과 대구·경북, 황해권 등 3개가 추가되었다. 그리고는 2012 총선·대선을 앞두고 다시 3차 심사가 진행되더니 충북과 강원도가 추가되었다.

2004년 이후 7년 간 6개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된 외국인 직접투자는 총 투자액의 고작 3.6%에 불과했고, 정부가(지식경제부 경제자유구역위원회)가 나서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 작업을 벌였으니 추가로 허가해서는 안되는 게 상식이지만 가장 어려운 게 상식.

대표적으로 부진한 곳이 황해경제자유구역이다. 2008년 5월 경기도와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으로 구성된 황해경제자유구역은 사업자로 지정된 LH공사가 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물러나 사업해제 위기에 놓였다. 경제자유구역 사업지구로 지정되면서 3년여 동안 주택과 토지거래 제한은 물론 주택 증·개축도 일체 중단돼 이주를 준비하며 보상만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은 그동안 입은 막대한 재산피해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5년 간 헤맨 끝에 최근 다른 사업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지만 앞길을 예측할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청 공무원 129명을 87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은 그동안 평가에서 2년 연속 꼴찌를 했고 올해 평가에서 3연속 꼴찌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8년간 외자유치 실적은 20억 달러로 보도되고 있다. 평가에서 계속 1등을 하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과 비교하면 낯이 뜨겁다.

인천은 2012년 한 해만 31억 달러라고 한다. 그러면 인천은 정말 잘나가도 너~무 잘나가나? 최근 전해진 언론 보도 내용을 읽어보자.

- "지자체 곳곳 재정파탄 위기, 장밋빛이 잿빛으로… 인천 경제자유구역'개발사업들 줄줄이 중단·무산 … 주민들 집값 폭락에 '못 살겠다'"

- 2003년 국내 최초로 출범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인천시는 우리나라의 신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글로벌시티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쏟아냈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장밋빛 전망은 이미 잿빛으로 변했다.

- 2008년 국제금융 위기 여파와 투자 유치 실패로 대규모 개발사업 상당수가 무산됐거나 기약이 없는 상태이다. 거품이 낀 부동산 경기를 철썩 같이 믿었던 현지 이주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 치고 있다.

- 지난 3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당초 계획된 국제업무타운과 로봇테마파크 등 랜드마크 사업이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이름만 국제도시'에는 아파트단지만 휑하게 서 있을 뿐이다.

- 영종하늘도시, 아파트를 분양 받은 수천 명이 "기반시설 미비 등으로 집값이 떨어졌다"며 시공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최근 분양대금 일부를 돌려받게 된 영종하늘도시.

- 지역 시민단체는 인천시가 외자 유치보다는 집을 지어 땅 장사하는 데 매달리다 보니 경제자유구역이 아닌 아파트 자유구역이 됐다 … 경제자유구역 개발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 외자를 빙자한 카지노 자본 유치와 재벌기업 특혜 시비 등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분개하고 있다.

◇ 경제자유구역이 아파트자유구역으로

가장 잘 나간다는 인천이 이런 수모를 겪고 있으니 나머지는 생각하면 답답하다. 왜 경제자유구역이 지지부진했을까? 땅은 좁은데 지역별 나눠 먹기식으로 떼를 써 구역을 지정했으니 규모만 커졌지 특화를 통한 경쟁력은 내리막을 달린 것이다. 떼를 쓴다고 주면 되는가? 안 된다. 그러나 선거가 있잖은가. 총선, 대선 때문에 정치권이 개입해 떼를 쓰다 보니 선거용 포퓰리즘에 따른 무분별한 지구 지정이 이어졌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 유치실적 저조, 부동산경기 침체 등이 얽히며 경제자유구역은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현실은 외면하고 탁상공론식 청사진만 늘어놓은 것이다. 명분은 늘 거창하다. 지역 균형개발과 형평성이다. 이 논리를 갖다 대면 누구도 나서 반대하기가 어렵다. 지정되면 당장 땅값이 오른다는데 지역주민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경제자유구역은 우리나라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이어가는 중요한 장기적 사업이지만 현재는 껍데기만 남았다.

경제자유구역은 지역균형으로 따질 게 아니다. 지역이기주의로 떼를 쓸 게 아니라 넓게 봐야 한다. 중국도 경제자유구역은 9곳뿐인데 우리는 8개나 된다. 중국이 우리보다 국토면적 96배, 국내총생산(GDP)는 6배나 된다는 걸 굳이 비교할 것 없이 누가 봐도 무리다. 지금으로서는 하나라도 성공하면 다행이다. 경제자유구역마다 세금을 낮춰주고, 자금을 지원하고 인프라를 지원하고, 규제는 대폭 완화하겠다고 한다.

그럴 듯하지만 별 소용없는 이야기이다. 지구촌 어느 경제자유구역도 그런 서비스를 안 해 주는 곳은 없다.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전략과 주제가 필요하다. 경제자유구역은 벤처기업이 아니다. 하다 안 되면 접거나 망하고 말지가 아니다. 엄청난 예산이 쏟아 부어지고 그 예산은 국민의 혈세이고 빚이다.

성공모델 하나 나오기도 전에 여기 저기 허가 해 준 포퓰리즘을 어찌 해결할 지 깜깜하다. 게다가 막차를 타고 이번에 지정된 동해안과 충북은 민간평가에서 경제성이 낮다고 고개를 저은 곳이다. 그런데 거기서 지금 사무실을 어디에 둘 거며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지를 놓고 빚잔치를 벌이느라 싸운다니 답답하다.

경제자유구역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외자유치로 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취지인데 실속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지정하고 추진하니 이미 실패는 예고된 상태이다. 이건 본래 후진국이나 사회주의 국가들이 주로 써먹는 개발모델이다. 그 나라가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갖고 있지만 특정구역만 개방해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방식이다.

아일랜드가 농업국가에서 공업화를 꾀하며 1959년에 처음 시작했다. 아일랜드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자 70년대 이후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이 도입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120개국에 2300여 곳의 경제자유구역이 마련돼 있다. 그러니 성공이란 쉽지 않다.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규제를 풀 방안이 마땅치 않아 특정 지역에서만이라도 규제를 완화해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의도인 건 알겠다. 그러나 외국인투자는 오지 않고 투기꾼만 모여들고 각종 연관 산업과 관련 기업, 접근성과 주거여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짜임새 있게 연결되지 않는데 누가 모여들겠는가.

우리는 무역 규모만 1조 달러를 넘고 자유무역협정을 동시다발로 맺은 개방경제 국가이다. 이 사업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졌고 우리가 대대적으로 올인할 만한 사업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더구나 이렇게 허술하게 묻지마 개발로 덤벼든다면 실패는 너무 자명하다. 정신들 바짝 차려야 한다. 애꿎은 지역주민들만 빚더미에 올라앉게 생겼다.
snip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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