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이 크게 유행을 하고 있다.
음악은 물론 의상과 음식에서도 이 '뒤섞음'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함박스테이크와 같은
양식에 김치가 따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한지로 만든 서양식 드레스가 패션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퓨전이란 말 그대로 이질적인 문화들이 하나로 섞여 용해된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찌 보면 새로운 문화의 발달이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도 있다. 이질적인 문화의 유입이 전래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로 인한 일종의 변종결합체가 새로운 종류의 문화로 발전하거나 새로운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하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탄생배경이 다른 음악이 만나 새로운 음악적 질서로 용해될 때 우리는 그것을 퓨전이라 부른다. 예를 들자면, 재즈는 아프리카 음악과
유럽음악의 혼융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퓨전 재즈는 이러한 재즈와 록음악이 다시 뒤섞인 것이다. 서구음악의 유입을 통해 독특한 장르로 발전해간 한국가곡도 따지고 보면 이런 '퓨전 현상'의 꽤 괜찮은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섞음이 얼치기 뒤범벅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문화적 코드가 다른 것들이 만나 처음부터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한국음악의 대중화, 세계화를 내세우며
시도한 많은 뒤섞음이 그 다양함만큼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를 내세우며 보편적 정서에 호소한답시고 서양의 음계와 기법에 기대다가는 우리 전통음악이 지니는 고도의 예술적 특성을 저버릴 수 있다. 그 독특함을 버리고 세계화를 넘볼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화는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퓨전이 한국음악의 영역을 넓혀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곡이라 하여 우리
악기의 특성에 맞는
편곡과정을 거치지 않고 우리 악기로 연주하는 식으로는 결코 우리 음악을 살찌울 수 없다. 오히려 원곡의 감동까지 훼손하여 괜히 우리 악기에 무슨 결함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줄 수도 있다.
음악의 영역에서도 독창성은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얼치기 퓨전으로 우리 음악의 특성도 살리지 못하고 우리 악기의 독특한 매력을 오히려 얼버무리는 일이 한국음악의 대중화 혹은 세계화의 이름으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창조적 혼융을 주문하고 싶은 것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