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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진나라 ‘삽질’의 대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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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3. 5. 3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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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13.05.30 03:33 주소추가  수신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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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진나라 ‘삽질’의 대가는

 

한겨레|입력2009.02.06 19:06|수정2009.02.06 22:31

 

 

[한겨레]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겨울, 용산. 버젓한 동네 사장님은 철거민이 됐고 범죄자로 매도당했고 억울한 시신이 됐습니다. 집권당의 대표라는 이는 전국이 공사판이 돼야 한다고 했고 지금 공사 때문에 사람이 죽었고 장차 공사 때문에 이 사회가 무너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규모 개발공사는 예부터 독재자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자신의 기념물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걸까요. 진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한 후 쉴 새 없이 토목사업을 벌였습니다. 악명 높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와 네로는 이스트모스 땅을 관통하는 '운하'를 파고자 했습니다. 원래 이스트모스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좁다란 땅이었습니다(이 이름은 나중에 좁은 땅, 곧 지협 일반을 뜻하는 'isthmus'란 영어 단어가 되지요). 배로 이동하는 게 익숙했던 지중해 사람들은 이스트모스 지협 때문에 몹시 불편했습니다. 길고 위험한 항로로 멀리 돌아가야 했으니까요.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와는 달리) 운하가 제법 필요한 상황이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사람들은 이 운하를 파는 삽질에 부정적이었던 듯합니다. 그들은 이스트모스 공사의 실패를 당연하게 생각했거든요. 숫제 '이스트모스를 관통하다'(Isthmum perfodere, 이스트뭄 페르포데레)라는 라틴어 격언이 생겼다지요. 에라스뮈스에 따르면 이 격언은 "어떤 일에 있어 성과 없이 굉장히 큰 노력을 쏟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네요. 속된 말로 "삽질한다"는 표현과 마침맞습니다.

옛사람들은 이 야심찬 공사를 인간의 지나친 오만(hybris, 휘브리스)으로 여겼던 걸까요? 오만한 인간은 결국 신의 분노를 산다고 그들은 믿었으니까요. 그러나 단지 그런 종교적인 심성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마천은 진나라 장수 몽염의 전기를 썼습니다(<사기>, 몽염열전). 몽염은 진시황제의 명령으로 북방을 방어하며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권력투쟁에서 패해,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지요. 몽염은 억울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잘못을 지었기에, 죄도 없이 죽어야 하는가?" 한참 있다가 그는 말합니다. "1만여 리에 걸쳐 성을 쌓았으니, 그러는 동안 땅의 맥[地脈]을 끊은 것이 적지 않았겠지. 이것이 나의 죄인가보다." 함부로 땅을 파는 자는 신의 노여움을 산다는 믿음이,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퍼져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몽염의 말을 매섭게 질타합니다. "(만리장성은) 백성의 고통을 무시하고 벌인 사업이었다. … 몽염은 황제를 설득하여 민중의 가난을 구제하고 백성의 화합을 도모하기는커녕, 황제의 비위나 맞추려고 토목공사를 벌였던 것이다. 그러니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 어찌 지맥을 끊은 것에 죄를 돌리려 하는가!" 사마천이 보기에 땅의 신에게 저지른 죄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을 돌보지 않고 토목공사를 밀어붙인 죄, 그게 진짜 큰 죄악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라고 사마천은 말합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서울에서만 재개발 사업으로 15만 가구의 삶터를 밀어버리겠답니다. 이 정권은 사람은 돌보지 않고, '건설자본의 비위나 맞추려고' 공사나 벌일 뿐입니다. 이 죄는 또 얼마나 큽니까?

김태권 만화가·<십자군 이야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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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거지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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