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1987), 천성산 터널(2001), 부안 방사능폐기물처리장(2003), 한-미 FTA(2004), 제주 해군기지(2007), 4대강(2008), 용산재개발(2009). 미국산 쇠고기(2012)…
이름만 들어도 쉽게 떠오르는 우리 사회 대표적 갈등사례들이다. 일부는 현재 진행 형이다. 위 사례들처럼 정부 정책을 둘러싼 공공 갈등 사례는 그래도 그 수가 손에 꼽을만하다. 민간 집단간 갈등들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한 분야 예외 없이 다양한 갈등들로 점철돼 있다. 정치는 보수-진보, 남-북, 동-서(지역갈등) 갈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있다. 경제도 계층간(소득 양극화), 대기업-중소기업간(경제력 집중), 수도권-지방간(지역 불균형) 갈등의 골이 깊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신-구 세대간 불신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2011년 9월 기준 국내거주외국인 수 141만 명을 넘어선 다문화 시대를 맞아 내-외국인간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한 마디로 ‘총체적 갈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 양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향후 남북통일이 될 경우 과거 통일 독일사회가 겪었던 갈등들마저 더해지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질 것이다.
하지만 갈등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시각을 달리해 보면, 갈등이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 만큼 변화와 발전을 향한 건강한 역동성 또한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위험과 기회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졌음이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 사회의 갈등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에 따라 미래 우리나라 경제의 도약과 사회 선진화를 통한 국격(國格) 제고 여부 등이 결정될 것이다.
한국경제 선진화를 위해 갈등관리가 중요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차이와 이익추구행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권위주의 사회보다 더 많은 갈등이 표출된다. 갈등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큰 모습이다. 역기능이 크면 사회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동력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당연히 그 나라 경제 발전에도 해가 된다. 갈등은 직접적 이해관계세력은 물론, 제 3자격인 그 사회와 구성원들에게까지도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부(負)의 사회적 거래비용을 지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정량적 비용보다 더 크고 심각한 비용은 사회구성원간의 신뢰 상실, 법·제도의 유명무실화 등 소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손실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가다. 여기서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게 만드는 일체의 신뢰, 규범 등을 지칭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적 자본의 손실은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떠안게 만듦으로써 성장과 발전을 저해한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아르헨티나 사례다. 아르헨티나는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G5안에 들 정도로 풍요로운 부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였다. 지금의 스페인, 이탈리아보다 더 부자나라였다. 이탈리아 동화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가 쓴 유명한 ‘엄마 찾아 삼만리’ 라는 동화가 있다. 주인공 소년 마르코가 부자나라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마르코가 향한 바로 그 부강한 나라가 아르헨티나였다. 당시 이탈리아 동화작가의 눈에도 아르헨티나는 부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그 영광은 반세기 만에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다.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이지만 정치지도자들은 빈부갈등을 정치적으로 악용했고, 정부의 고통분담 요구에 대한 시민의식의 수준은 이를 수용하기엔 너무 이기적이었다. 결국 급속한 성장에 따른 어두운 단면으로 나타난 소득불평등 심화 현상 개선에 정부의 갈등관리가 실패하고,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적 임기응변식 대응이 맞물리면서 국가와 국민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졌다. 결과는 경제 발전의 방향과 동력 상실, 시민 폭동으로 나타났다. 1910년 2,132 달러였던 1인당 명목국민소득은 이후 등락을 거듭하면서 2002년 2,708 달러를 기록, 거의 100년의 가까운 시간과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돈도 돈이지만 책임 있는 시민의식의 붕괴는 더 큰 문제였다. 당시 빈번했던 소요 때마다 일부 시민들은 상점을 약탈하는 등 물리적 폭동을 일으켰다. 서울 시내에서 이 같은 일들이 일상화 되다시피 했다면 어땠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 비단 아르헨티나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IMF 외환위기 직전 노사정 갈등심화에 대한 관리실패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던 경험을 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하면서 미래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갈등관리시스템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한 나라의 경제와 기업이 아무리 좋은 대내외 환경, 산업구조, 신기술 등을 가졌다 할지라도 경제활동 주체간 갈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충격이 왔을 때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 갈등관리가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미숙한 우리 사회의 갈등관리 역량
2011년 8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전에 없던 풍경이 펼쳐졌다. 그 많던 노점상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가 휴게소운영사, 노점상연합회와 3자 합의를 통해 전국 164개 휴게소의 불법노점상을 철거하는 대신 이들에게 ‘하이숍(Hi-Shop)’이란 이름의 잡화매장을 운영할 수 있게 해 준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무질서한 상행위를 해오던 노점상들과의 해묵은 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한 성공사례라고 소개했다. 반면 2011년 5월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는 한바탕 전쟁이 치러졌다. 구청 단속반원들과 노점상들간에 철거를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면서 거리가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어제 오늘 봐 오던 광경은 아니지만 위 하이숍 사례와 비교하면 분명 대조된다.
그렇다면 하이숍은 정말 성공한 갈등관리 사례일까. 하이숍 출범의 여파는 그 동안 합법적으로 잡화매장을 운영해 오던 기존 업체들의 퇴출 현상으로 나타났다. 도로공사가 하이숍과 맺은 판매수수료 18%에 비해 35% 이상의 수수료를 내야 하는 기존 매장들 입장에서는 경쟁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노점상 문제 해결이 기존업체들과의 갈등으로 전이됨으로써 갈등 해결이 아닌 새로운 갈등을 낳은 것이다. 사전에 정교한 갈등관리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애초 기존 매장측 이해관계까지도 고려한 해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위 사례는 우리 사회 갈등관리시스템의 미숙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 해결을 모색하는 갈등관리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음이다. 특히 그 동안 우리나라 갈등관리는 주로 정부사업과 관련된 공공갈등관리에 치중해 온 면이 많다. 위 하이숍 사례처럼 민간 내 갈등에 속하나 사회적 파장이 커서 공공성을 띠는 갈등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정부 개별부처에 각종 분쟁조정원회를 운영하는 등 나름의 갈등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하지만 공공과 민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포괄적으로 조율하는 조정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해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국민 고충을 처리하고 권익을 신장한다는 취지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 2008년 2월 출범한 국민권익위원회도 여전히 공공갈등 관리에 치중해 있는 모습이다. 훨씬 다양하고 발생빈도가 높은 민간갈등 관리를 위한 정부차원의 조정기구들은 부처별로 쪼개져 있다. 원활한 소통과 정책공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범 정부차원의 통합 제도화 시도는 2000년대 들어서야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역사가 짧은 탓에 법규범, 조직운영체계, 갈등해결 절차 등 제반 여건과 관리 노하우가 미흡해 시행착오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갈등관리 최적화를 위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선진국 경험에서 배우는 한 수
혹자는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른데, 선진국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법이냐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비록 역사적, 사회적 배경은 우리와 다를지라도 오랜 시행착오의 경험에서 획득된 좋은 ‘방법론’ 정도는 차용할 가치가 있다. 잘된 부분은 타산지석으로, 잘못된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사회에 적합한 갈등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우리 경제 발전과 사회 선진화에도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① 이해관계자의 참여 보장 및 확대
선진국들의 갈등관리에 있어서의 공통분모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폭넓게 보장된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절차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갈등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보장을 최우선시 하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갈등관리에 실패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해관계자들간 소통부족이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피로 점철된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신·구교간 종교갈등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영국이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함을 계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지역갈등으로 19세기 말 연방붕괴 직전까지 갔던 스위스도 다수당인 신교측이 소수당인 구교측을 끌어안은 데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사회에 가장 문제가 된 것도 이해세력을 배제한 정부의 일방독주였다. 그 잔재는 민주화 이후에도 쉽게 청산되지 않은 채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요, 제도로 형성됐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과 행태변화에 오랜 시간을 요하는 탓이다. 아직도 이 문제가 우리사회 갈등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최근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는 가칭 국가공공토론위원회 신설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국가공공토론위원회가 벤치마킹 한 것이 바로 프랑스의 공공토론위원회(CNDP)다. 이는 국책사업 결정 전 심의과정에 대중의 공공토론을 보장해 최대한의 민의를 수렴하기 위한 독립적 사회갈등관리기구다. 사업정보를 주민에게 제공하고, 장기간(6개월~2년)에 걸쳐 입법부, 사업부,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사를 모두 수렴함으로써 타협에 바탕한 대안 도출과 책임소재 명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통합갈등관리제도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1958년 헌법기관으로 설립된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가 그것인데 사용자 대표, 노동자 대표, 자유직업 대표, 각종 협동조합 대표 등을 참석시켜 경제사회환경 정책에 대한 논의 활성화와 국민적 합의를 도모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 출범 시 경제사회위원회가 채택한 모델이기도 하다.
② 대안중심의 유인기제 설계
선진국들은 사후약방문 형태가 아닌 사전 예방중심의 제도를 잘 설계, 운영하고 있다. 어차피 갈등은 한 쪽이 의도한 결과만을 가져오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어느 시점, 어느 정도의 타협이 전제되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은 갈등상황을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이 되게 만드는 대안적 분쟁해결(ADR)에 집중함으로써 결실을 거뒀다. 대안적 분쟁해결제도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정책결정 이전 단계에서부터 보장되고, 상호 합의된 규칙에 기반해, 시간이 걸릴지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해결을 시도하는 제도로 정의된다. 이 때 중요한 게 공정성과 객관성의 확보다. 그래야만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 속에서도 제시된 대안에 대해 타협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립적인 제 3자가 문제해결의 키를 잡게 하는 것이다. 권위와 정당성을 위임 받은 제 3자는 알선(conciliation), 조정(mediation), 중재(arbitration), 협상(negotiation) 등 다양하고 정교한 절차적 방법을 활용, 이해관계자 상호간 윈-윈의 정합게임 구도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제 3자 선정에 있어서도 갈등당사자간 합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제 3자적 역할을 150여 년 전부터 법이 담당해 오고 있다. 개별 갈등 사안마다 법이 있을 정도로 세분화 된 법률을 통해 갈등해결을 유도하고 있다. 법치의 나라 미국답다. 관습법 전통이 강한 영국은 시민협의제도에 조정역할을 맡기고 있다. 지역단위나 국가차원의 정책이슈들에 대해 통합정부사이트(directgov.org.uk)를 운영함으로써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은 누구나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토대로 협의된 시행규칙(CPWC)을 제정, 시행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나온 합의된 대안적 권고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적극 수용해야 할 의무를 진다.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의 현대판 확장이라 할 수 있다.
③ 갈등의 종국적 해결자, 정치 리더십
갈등관리에 성공한 선진국은 갈등의 고비고비마다 정치적 리더십이 발휘되었다. 물론 정치 리더십은 오랜 시간 축적된 그 사회의 제반 환경과 제도가 뒷받침됨으로써 원만하게 작동할 수 있었다. 지난 1970,80년대 네덜란드와 아일랜드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했었다.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파업과 폭동 속에서 노사갈등은 극심했다. 위기 탈출의 동력은 사회적 연대라는 모토 하에 실현된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이었다. 두 나라 모두 이해관계세력간 참여와 타협을 유도한 정치지도력에서 빛을 발했다. 네덜란드에는 1982년 노사정 대타협의 결과인 바세나(Wassenaar) 협약을 이끈 루버스(R. Lubbers) 총리가 있었다. 아일랜드에도 1987년 사회연대협약을 주도한 찰스 호히(Charles Haughey) 총리가 있었다. 이들은 여소야대의 불리한 정치구도 속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조정과 인내로 대타협을 이뤄내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해관계세력들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들은 정부가 일방독주의 유혹을 갖게 되기 쉽다. 갈등 조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임기라는 시간적 제한이 있는 정권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사례는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위원회 출범을 통해 경제난을 극복했던 경험에서도 준용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가 이후 이 같은 성공경험을 제도화시키는 데에 실패함으로써 점차 시들해진 것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④ 미래 세대에 대한 갈등관리 교육 필수
국가도, 경제도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를 잘 길러내야 한다. 갈등관리 교육체계가 잘 구비돼 있는 선진국들은 위기 때 강했다. 이는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경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영국은 20세기 초부터 정부와 시민사회가 갈등관리 교육투자에 열심이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초·중·고등학교에 갈등관리 교육과목을 개설해 젊은 세대에 대한 갈등관리 소양교육을 전개해 오고 있다. 학교는 물론 공공기관과 기업에서도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해 왔다. 현재 일반 기업을 포함해 매년 수천 개 기관들이 영국 정부가 개설한 갈등관리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한해 수천 명씩 배출되는 갈등관리전문가들은 사회 각처에서 갈등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누구나가 잠재적 갈등 당사자이기에 이러한 갈등관리 시민교육은 실제 갈등이 발생했을 때 큰 결실을 거두었다. 영국이 1970년대 말 대처리즘의 부상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으로 극심한 사회경제적 혼란에 빠졌을 때 정부와 경제계간 타협을 유도하고 갈등을 극복하는 데 정부, 기업,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사회 요소요소에 소속된 갈등관리전문가들의 중재와 조정 역할이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이에 반해 앞서 언급한 바 있는 1960,70년대의 아르헨티나는 미래 세대에 대한 갈등관리 교육에 실패한 경우다. 치솟는 청년실업률 속에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들은 급기야 기성세대와 정부에 대한 불만을 폭력과 약탈로 표출했다. 건전한 공동체적 시민의식을 함양할 학습기회를 학교에서 접하지 못한 채 현실의 높은 벽에 좌절한 많은 젊은이들은 기회를 찾아 조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100년 전 그들의 선조가 떠나왔던 고향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가겠다며 국적변경을 요구할 정도였다. 갈등관리 실패가 한 국가의 정체성마저 무너뜨리고 후손에게 미래 비전을 줄 수 없게 됨을 보여 준다.
‘넓은 참여와 공존을 지향하는 인센티브제공형 갈등관리’에서 길 찾아야
그렇다면 선진국의 교훈을 염두에 두되 우리 사회에 적합한 갈등관리체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과거 우리나라의 갈등관리가 어려웠던 이유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립과 승자독식의 문화 때문이다.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양보는 곧 패배요,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두려움과 고정관념이 형성되었다. 현재의 양보를 미래 시점에 보상받아 본 경험도 부족했다. 이런 시민의식 수준과 문화 생태계 속에서는 해결의 길이 보인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여기에 아무리 좋은 선진국형 방법론을 차용한다 한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격이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 사회도 갈등관리 성공의 경험이 있다. IMF 외환위기 때는 전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섰고,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성공경험이 있다는 것은 제도화 할 수 있음이다. 하지만 그 동안은 그러한 노력이 일회성에 그쳐 지속성을 갖지 못한 나머지 시민의 의식에 노하우와 학습경험으로 축적되지 못했다. 인내하고 책임질 줄 아는 시민의식의 부재와 극단적 집단이기심이 뒤섞인 욕구의 분출만 있었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제대로 협상할 줄 아는 소양이 우리 각자에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권과 지식인 사회의 실천이 미흡했다. 아쉽게도 사회 지도층의 권위주의적 특권의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어서 걱정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선진사회로의 도약을 위해 갈등관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에 적합한 갈등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념·계층·지역·세대간 갈등을 해소해 사회통합과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은 갈등에 대한 시민의 참여 및 해결의지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이해관계자가 작은 성공경험이라도 실제 체험할 수 있게 대안을 제시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갈등관리제도를 설계, 운영해야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갈등관리도 잘 하기 위해서는 작은 성공경험이라도 해 봄으로써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유행에 민감하고, ‘빨리빨리!’로 급하며, 집단주의 전통에 따라 남을 의식하는 성향이 강한 우리 민족성을 고려할 때, 채찍보다는 이기심의 발로를 선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당근을 제공하는 방식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사실 애당초 게임에 시켜주지 않아서 그렇지 참여만 보장해 주면 혼신을 다 하는 게 우리 민족성이다. 수십 만 명이 길거리에 모여 응원을 해도 폭동이 나지 않는, 바깥사람들이 보기엔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나라가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이다.
이에 이해당사자들의 인내심 있는 지속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들을 제공하고, 타협에 이를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들이 포함된 대안제시 중심의 인센티브제공형 갈등관리시스템을 설계, 운영하는 데서 우리 사회 갈등관리의 길을 찾아 보았으면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갈등관리전문기관을 설립, 갈등관리전문인력을 육성해 그들이 지방자치단체, 공·사기업, 협동조합, 산업별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다양한 사회조직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들로 하여금 몸담고 있는 곳에서 갈등요인을 모니터링하고 이해관계를 상시 조정케 함으로써 사전예방적 갈등관리가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갈등관리전문가가 제 3자적 입장에서 갈등 비용과 편익에 관련된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가 담겨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조정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선택과 타협을 유도한다면 점차 성공경험들을 창출, 사회적 자본으로 축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이해관계자들간의 갈등해결에만 치중한 나머지 소비자 잉여 등 사회 전체의 후생이익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FTA에 따른 무관세 감귤류 수입유통권을 놓고 감귤협동조합, 가공업협회, 유통업협회간 수년째 이어져 오는 날 선 공방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여러 대안을 검토한 끝에 경쟁논리에 근거, 수입권공매제로 해결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이익집단들은 저마다의 논리를 근거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책 변경을 촉구하고 있다. 문제 해결에 있어 정책결정의 중심은 소비자 후생 증가에 두되 이해당사자들에게 비용과 편익이 동시에 가미된 인센티브제안형 타협안을 제시한다면 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활용하기 좋은 갈등관리 기제들
우리 사회의 특성과 인프라를 고려할 때 갈등관리에 유용한 몇몇 기제들이 있다. 첫째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발한 의사소통 기반이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전 세계 152개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된 국제통신연합(ITU) 주관, 정보통신(ICT) 발전지수(IDI) 세계 1위 국가로 선정됐다. 정보통신 접근도, 활용도, 기술역량 등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다.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은 갈등관리에 있어서도 SNS 등을 활용한 정보공개, 인터넷 상시 공청회 등을 통한 사이버 토론문화 활성화, 다양한 해결 대안의 신속한 수집 등을 가능케 해준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이 건설적인 갈등해결 정책을 개발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한다면 앞서 언급한 영국의 사례보다 더 성공적인 갈등관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둘째,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이다. 모든 국민이 대통령이라 할 정도로 온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몰입도가 크다. 자연히 언론의 영향력이 크고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논란이 되는 사회적 이슈가 보도되자마자 인터넷 사이트에 수많은 찬반 댓글이 달리면서 빛의 속도로 파급되고 세간의 관심은 증폭된다. 어떨 땐 그로 인해 사람의 생사가 갈리는 일들마저 발생할 정도다. 실로 우리나라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에 시민은 제 4의 권력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언론 스스로도 깨어 있는 시대적 소명의식과 자세, 실천적 노력으로 사회갈등 해소와 통합에 적극 호응한다면 한국사회 갈등 해결과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언론매체간 이념적 편향과 불신의 골이 깊어 갈등해결과 통합보다는 분열과 편가르기를 유발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류 언론과 소위 ‘X꼼수’로 불리는 비주류 언론 간 갈등(media divide)이 대표적이다. 언론은 각자의 터널 속에서 고집을 피우지 말고 넓은 소통의 장으로 나와 공존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과 경제적 부유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쥬
비록 제도적인 차원의 제안은 아니지만 가진 계층(The Haves)이 가지지 못한 계층(The Have-Nots)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면 계층간 신뢰회복에 도움이 되고 갈등해결에도 좋을 것이다. 갈등의 유형을 분류할 때 이념간,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범주들로 다양하게 나누고는 있지만, 궁극적인 문제해결의 주도권은 그 사회구조의 피라미드 위편에 자리 잡고 있는 부류의 인식과 태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 등의 용어는 바로 이들 사회 상층부에 대해 먼저 손을 내밀어 줄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자발의 영역이니만큼 선각자적 지성들이 나와 줄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애(humanity)에 대한 기대다. 그들의 나눔과 배려, 관용을 통해 사회라는 것이 함께 하는 공동체임을 동시대인과 후손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신호를 보내고, 동시에 양극화를 해소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가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의 오랜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과 공존을 실현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계층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정치권의 리더십 발휘가 절대 선결 요건이다. 공정한 선거제도 등 정치개혁과 정부 및 공기업 혁신 등 관료의 거듭남을 통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정치권과 관료가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한국 경제의 발전도, 사회의 선진화도, 미래 세대의 꿈과 희망의 실현도 한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갈등관리와 사회통합을 위해 정계는 물론 경제계, 시민단체, 언론계, 학계 등 모든 사회세력들의 갈등관리 역량 제고가 요구된다. 그 출발점은 소통과 상호인정에 있다. 내게는 상식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든 집단이든 상식의 폭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데에서 갈등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신흥국가들은 우리를 추격해 오고 있고, 선진국들과의 간격은 좀처럼 좁히기 쉽지 않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화와 타협, 협력과 합의를 통해 사회경제적 갈등들을 지혜롭게 관리하기 위한 프레임웤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최적화 해 구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민(市民)이란 말에 부끄럽지 않아야 할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