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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의 범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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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의 범주에 관하여

 

  • 1.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기점 찾기

    흔히들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경실련의 창립을 그 기점으로 이야기합니다. 경실련이 1989년 7월에 창립되었으므로 만 10년이 조금 지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당장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지난 번 강의에서 분명히 YMCA도 시민단체라고 말했는데 YMCA는 그 역사가 100년에 이르는 데 이게 웬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YMCA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전국에 60여개가 넘는 지부가 있는 거대조직이기도 합니다. 또 1980년대 전두환독재정권 시절에는 YMCA내의 각종 소그룹 모임이나 교육프로그램이 당시 재야운동이나 민중운동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교조나 과학기술자운동의 모태가 되는 모임들이 이 시절 YMCA에 있었고 지역Y는 노동운동의 교육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잘 알려진 사회학자들, 예컨대 참여연대의 정책위원장을 지내고 있는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같은 분들이 시민운동의 역사를 10년으로 볼까요? 재야운동이나 민중운동과 구분하여 시민운동 혹은 신사회운동으로 부르는 흐름은 1987년 6월항쟁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입니다.(시민사회와 시민운동, 김호기.유팔무, 한울, 1995/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운동, 조희연, 당대,1999 등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보다 다원화되고 민주화되어 가는 시기에 나타난 운동의 흐름이라는 거지요.


    경실련을 창립한 서경석목사(현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는 1992년 기독교사상이라는 잡지에서 시민운동을 설명하면서 재야운동, 민중운동과 구별하여 이렇게 분별정립한 적이 있습니다. 크게 3가지로 설명하는 데 하나는 합법적이라는 것과 비폭력적이라는 것, 그리고 대안중심의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것처럼 시민운동의 특징을 잘 설명한 말도 없었습니다. 재야민중운동은 불법도 불사했고, 폭력도 사용했으며, 독재타도 혹은 민중민주주의 같은 강령적 구호로 운동의 중요한 근거를 삼았다고 보였으니까요. 이같은 구분은 민중운동이 1987년 이후 변화된 사회적 조건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긴 했지만 마치 민중운동은 잘못된 것인양 하는 정서가 있는 것이어서-또 실제 민중운동과 거리를 두었고-시민운동은 재야운동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보여졌지요. 이게 두고두고 경실련이 재야나 민중운동 세력과 가까울 수 없도록 만든 부메랑이 됩니다. 재야도 민중운동도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가 되었지만 하여튼 그러면 왜 경실련의 창립을 기점으로 보느냐? 학문적으로는 1987년 이후의 한국 사회의 변화라는 시대적 조건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근거라면 또 하나는 운동의 성격과 관련된 것이라고 봅니다. YMCA는 비록 재야나 민중운동과의 관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지금도 시민운동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전현직 YMCA출신들은 과거 기독교의 재야운동에서 훌륭하게 일하시던 분들 입니다.- YMCA는 사회개혁이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경실련은 아주 분명하게 사회개혁을 자신의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이름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니까요.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체제가 당시 경실련의 주요 전문가들이 생각하던 사회체제였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지금의 우리 시민운동의 역사를 경실련 창립을 그 기점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2. 시민운동 영역 만들기

    경실련이 만들어지고 나서 몇 년은 지금과 같은 영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 주장, 주택임대차보호법 문제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경제적, 사회적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그 발언의 합리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넓혀갔지만 정부는 대화조차 잘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운동이 일정하게 자기영역을 만들고 발전하게 되는 과정은 몇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활동입니다. 이지문 중위의 양심선언을 통해 군부대내의 투표제도가 바뀌는 성과를 얻어내면서 시민단체가 선거과정에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 성과를 내었고 연대기구로서 시민운동을 영역화하는 성과를 낳았습니다. 또 국외적으로는 92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는 국내에 환경운동이라는 영역을 새롭게 부각시켰습니다. 물론 국제연대의 중요성까지.


    공선협활동에 이어 한국시민단체협의회(시민협) 등 연대기구의 활동은 시민운동을 경실련이나 환경련 등의 몇몇 큰 단체만의 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운동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시민운동권이라고 할만한 영역의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리우환경회의 이후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의 활동강화,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의 창립 등은 시민운동의 영역을 넓혀 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부분 92년경부터 이루어진 것입니다.

    3. 앗! 시민운동이 온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이 영향력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김영삼정부 시절에 있었던 한약분쟁에 대한 경실련의 중재활동과 금융실명제 실시부터 일 것입니다. 금융실명제는 경실련이 창립 초 부동산투기문제로 정부와 싸우고 있을 때부터 각종 정경유착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필요성을 강조해 온 것이어서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고 했을 때 자연스레 경실련이 주목받았습니다.

    더구나 한약분쟁의 경우 보사부가 아예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었던 일이었는데 시민단체가 중재를 이루어 놓음으로써 시민운동의 위상을 높여 놓았습니다. 그 해 경실련은 시사저널 조사 한국사회의 영향력 순위에서 '경실련, 군보다 세다'는 제목으로 상위에 오름으로써 사회가 시민운동에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시민단체는 시민이 신뢰할만한 집단에서 매번 상위에 오르게 되고 각종 현안에서 시민단체의 발언은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지방자치의 실시였습니다. 처음으로 치뤄진 94년의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였고 시민들의 참여의식을 높이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도시마다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실련의 지역조직도 이 당시 급속하게 늘어났습니다. 지방자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통단체들도 주목받았습니다. 녹색교통운동, 도시연대 등이 모두 90년대 중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한 단체들입니다.


    90년대 중반들어서 전문성이 강화된 부문단체의 창립과 지역조직들의 창립러시가 이어지면서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관련한 조직중에 시민운동지원기금은 민간이 돈을 모아 시민단체들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정부나 기업의 돈을 받아 시민단체의 자율성을 독립성을 훼손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시민단체의 언론으로 시민의 신문도 만들어졌습니다. 90년대 후반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참여연대의 창립도 이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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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민의 본래적 의미와 한국 시민사회의 대두

    일반적으로 시민의 개념은 “정치적 결정과정에의 참여”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본래 시민이라는 개념은 고대 도시국가의 개념으로부터 유래한다. 즉, 라틴어의 부르가리우스(burgarius)나 키비스(civis) 모두 고대에 있어서의 도시라는 특별한 형태의 조직과 직접적인 연관 선상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즉, 당시 존재했던 여타 비유럽적인 공동체 형태들과 차이가 나는 이들 도시 국가들의 특징에 의하여, 그리고 그러한 도시국가들을 다루는 고대 그리이스철학에서 부터 시민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Riedel, Manfred, Büregr, Staatsbürger, Bürgertum, in: Brunner, Otto, u. a. (Hrsg.),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 Stuttgart 1992, pp. 672-725, 여기서는 p. 672
    . 이러한 시민의 개념에 대한 철학사적인 접근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Arsitoteles)는 폴리스(Polis: 도시국가)를 시민의 통합체라고 규정하고, 또한 그의 정치 철학의 상당부분을 바로 이 폴리스를 중심으로 전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의 학자들은, 때에 따라서,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Arstoteles)의 사상을 “시민 공동체적 사상”이라고 규정짓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폴리스(Polis)내에서 어떠한 위치를 갖는가하는 부문의 문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떠한 이들을 시민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문제는, 이들의 권리 즉, 시민의 권리라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Döhn, Lothar, Bürgertum-Bürgerliche Gesellschaft, in: Mickel, W.(Hrsg.), Handlexikon zur Politikwissenschaft,, Bonn 1986, pp. 47-55, 여기에서는 p. 49
    . 그리고 이러한 권리는 그들의 폴리스(Polis)내에서의 역할에 종속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정치학> 에서 도시국가에 사는 주민들과 시민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지칭하지 않았고, 단지 도시국가의 행정 혹은 명예로운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만을 국한하여 시민이라고 지칭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은 우선적으로 사법적 절차와 정부에 참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진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훗날 시민이라는 개념을 규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는 중세 Brunner, Otto, Land und Herrschaft, 5. Aufl., Wien 1965, pp. 349 ff. 참고
    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 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즉, 시민이라는 개념이 「정치적 결정과정의 참여」라는 하나의 특권으로부터 비롯되었고, 그러한 “특권”이 보편화되는 과정을 통해 시민이라는 개념적용이 보편화되었다면, 결국 시민은 이러한 권리적 차원의 개념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권리라는 용어를 볼 때, 권리의 본질에 대하여는 법에 의해 부여된 의사의 힘으로 보는 의사설(意思説), 법에 의해 보호되는 이익이라고 보는 이익설(利益説) 등도 있으나, 일정한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법이 인정하는 힘이라고 보는 권리법력설(権利法力説)이 지배적 견해라는 사실에 입각해도 결국 시민이라는 개념은 이익, 그리고 이익추구의 수단으로써의 정치과정에의 참여권리라는 단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이 주체가 되는 시민사회가 우리나라에 언제 도래했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한국의 경우, “정치에 참여 할 수 있는 권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시민이라는 개념이 보편화 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 부터일까 하는 문제로 연결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쉽게 정의 되어질 수 없는 문제라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보편화 정도를 가장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척도로 “기능 할 수 있는 선거”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제부터 “본래적 의미의 선거가 존재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를 “비교적” 공정하게 치루었을 때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국회의원 선거”를 공정히 치뤘을 때를 기준으로 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모든 선거가 비교적 민주적 분위기에서 치뤄지게 된 때를 기준으로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기준도 문제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자신들이 그러한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고, 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전혀 두려움 없이 밝힐 수 있는 그러한 「심리적 상태」가 시민 사회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한 두 번의 민주적 상태에서의 선거로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즉, 민주적 상태가 어느정도 지속되고 그러한 상태에서의 수차례의 선거를 경험했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요건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한국에서의 시민사회는 1987년에 그 싹을 보였다는 주장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선 1987년에는 국민적 항쟁인 6.10 민주 항쟁이 존재했고, 뿐만아니라, 이 항쟁의 승리로,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했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서 6.10 항쟁을 통해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시민”임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 상태」는 그 이후 이어질 선거와 정치과정에서 다시 한번 독재권력에 의해서 무너진다면, 이는 1960년 4.19 학생 혁명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치뤄진 선거는 과거의 선거에 비하여, 비교적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상태에서 치뤄졌고, 그러한 결과 심리적 상태와 민주적 제도가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점차 정착되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전개 시점은 실제 최초의 한국의 시민운동 단체인 경실련의 태동시점과도 상당히 일치 됨을 보인다. 이러한 일치점은 결국 한국의 시민운동 역시 “시민”들이 제 역할을 하는 “시민사회”의 형성으로부터 비롯됨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난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 “시민사회”에서 최초의 시민운동 단체인 경실련이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한국의 시민운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럽의 시민운동과 차이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점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고 할 수 있다.


    2. 한국 시민사회의 특수성의 원인과 배경

    (1) 도시종주성

    한국의 도시화 과정은 다른 개발도상국의 도시화 과정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급 도시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볼 때, 약간의 차이는 발견되어 질 수 있다. 한 예로 시급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55년 24.5%에 불과 했던 것이 10년 후인 1965년에는 32.3%, 그리고 30년 후인 1985년에는 64.0%로 급성장 한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다른 개발도상국들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급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물론 1955년에 25개에 불과 하던 시가 1985년에는 50개로 불어났다는 점을 들어 설명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 네메스(Nemeth)와 스미스(Smith)는 우리나라와 필립핀과의 도시화 과정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식민지화 이전에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이 상당정도의 규모로 정치적 기능이 짜여 있었음을 지적한다 Nemeth, R./Smith, K., “The political economiy of contrastiong urban hierarchies in the South Korea and the Philippines” in: Timberlake(ed.), Urbanization in the World-Economy, pp. 183-206
    . 실제 이점은 서울의 도시종주성을 설명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의 도시종주성은 유럽국가들과 비교했을때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지만,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에 비해서는 그다지 심한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도시 인구의 성장과 도시의 숫적 증가는 얼마만큼 한국사회가 급변했는가를 말해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금까지 한국의 도시화는 많은 문제점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다른 개발도상국 보다는 그 심화 정도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서울의 종주성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실제 외국 접촉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의 종주성은 지금 현재도 좀처럼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러한 종주성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도출한다. 그것은 지방자치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냐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종주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의 지방자치는 표면적이고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본 연구의 주제인 시민운동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이기도하다. 즉, 이러한 도시의 종주성이 존재하는 한, 유럽과 같은 지역에 기반한 운동이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의 앞절에서도 지적했듯이, 본래 시민운동은 지역에 기반하고 지역에서 비롯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도시화 과정이 왜곡되서 이러한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지금 수도권에서 살고 있는 이들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온 이들로써, 이들의 주거지역과 고향은 차이가 난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들이 자신들의 주거지역에 갖는 관심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 기반한 운동이 활기를 띌 수 있는 상황적 여건이 조성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한국 사회에서의 시민운동이 유럽의 시민운동과 다를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또하나의 문제로 과도한 중앙집권적 구조를 들 수 있다. 이 부분은 시민운동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서울 중심의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실제 이부분은 서울의 도시 종주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도시종주성에 의해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중앙집중적 정치제도에 의해 서울의 도시 종주성이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양자간에는 분명 중요한 연관 관계가 있다. 우선 종주성은 외국 접촉의 관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점은 중앙집중적 정치제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하는데, 그 이유는 중앙 집중적 정치제도의 역사와 군사 정부에 의한 독재 체제 유지기간이 구조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간의 일치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우선 독재 정권의 유지에는 외국의 정보 이용과 차단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외국 접촉의 관문이라는 측면은 정권 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만일 이러한 외국 접촉의 관문이 종주도시이외에 다른 도시로 확산 된다면, 이는 정보의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음을 뜻하고, 동시에 독재 정권의 유지가 상당 부분 힘들게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 종주성에 관한 문제와 중앙집중적 정치제도의 문제는 과거 정권의 의도에 의해 더욱 과대 성장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민주화 이후에도 어느 정도 계속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측면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부분적이나마 의도적으로 특정 지방의 발전에 무관심했고, 또한 서울을 의도적으로 중심지화했었기 때문에 10여년이 되는 세월에 극복, 수정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는 한국 시민운동의 서울 의존적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된다 위의 책, p. 102
    .


    (2) 경제성장과 사회적 분화의 관계

    사회적 분화라는 의미는 때로는 다원주의 사회라는 말로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다원주의라고 할 때, “다양속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의 각 분야가 독립적이고 동시에 다른 분야에 의해 조정되거나 통제 받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각 분야간에 경쟁과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이러한 경쟁과 갈등 속에서 하나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주의론적 입장에서 이러한 다원주의는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로 비춰지기도 한다. 독일의 사회사상가 칼슈미트는 1932년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Der Begriff des Politische)"에서 다음과 같이 ”정치적“의 개념을 정의한다.

    ”정치과정과 동기에서 기인된다고 여기는 정치적 구분은 바로 적과 동지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의 범주라고 여겨질 수 있는데 어떠한 내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여기서 적이란 단지 공적인 관계에서의 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런 적을 개인적으로 증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적으로는 그의 공적인 적을 아껴주는 것이 좋다. 정치적인 대립관계는 그 어떠한 대립관계 보다도 적나라하고 집중적이다. 정치적일수록 적과 동지의 구분은 심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칼 슈미트는 적과 동지의 대립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정치라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점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적과 동지의 개념이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즉, 적과 동지의 개념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경쟁“의 개념으로 대치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칼 슈미트는 정치의 실종상태로 보았다는 것이다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Berlon 1963, p. 12
    . 칼 슈미트가 다원주의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또 다른 점은 바로 국가가 다른 사회적 단체 또는 기구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된다는 점이다. 본 연구에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다른 사회기구와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역으로 말한다면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국가의 역할은 일원화 된 사회에서의 국가의 역할보다 축소되어진다는 사실인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실제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에서는 다원주의 사회가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일원화된 사회구조와의 관계를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점은 한국 시민 운동의 특수성을 설명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고 생각된다.

    실제 한국은 박정희 정권시절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두환 군사 정권하에서도 세계 경제의 호황의 물력에 잘 적응해,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도약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 성장을 국가 주도형을 이룩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우 경제 성장과 사회적 분야의 팽창이 비례관계에 있지 못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칼 슈미트적 개념인 적과 동지의 관계가 전 국가와 사회 영역내에서 팽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의 반대 세력이나 모두 적과 동지의 개념에 입각해 선을 긋고, 그러한 구분에 입각해 선명성 투쟁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이점은 과연 우리사회에서 언제 시민사회가 발생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리의식”을 갖고, 조직적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하는 사회운동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 여건이지만, 그렇지 않은 시민운동의 경우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의 일부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발생과 시민의 개념을 무시한채 시민운동이라는 단어를 마구잡이로 사용, 심지어 1920년대에 한국에 시민운동이 존재했었다는 식으로 기술하는 경우까지 존재한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의 시민운동과 우리의 시민운동이 분명히 차이가 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유럽식의 시민운동과 우리의 시민운동의 동질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한국의 특수성만을 내세워, 유럽의 시민운동과는 다르다는 차이점을 강조하기도 하는 이중적 현상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운동과 유럽의 시민운동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며, 앞서 언급한 사회, 정치, 역사적 특성과 맞물려 이러한 차이점, 혹은 특수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이해 하기 위해 먼저 신사회운동 일반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III. 한국 시민운동과 유럽 시민운동의 차이점

    1. 신사회 운동의 특징

    신사회운동은 산업사회의 산물인 사회운동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사회운동(moderne soziale Bewegungen)이 하나의 운동 이데올로기에 그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다면, 신 사회운동(neue soziale Bewegungen)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그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신사회운동이, 산업사회적 물질차원의 이익갈등의 해소수단인 사회운동과는 다르게 탈물질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사회운동(moderne soziale Bewegungen)은 운동의 목적과 그에 따른 주제가 비교적 단일하고 선명한데 반하여, 신 사회운동은 그 목적과 주제가 매우 다양하며, 운동의 이슈도 매우 빠르게 바뀐다.
    셋째, 사회운동이 조직적인 측면에의 의존도가 높은 반면, 신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조직이라는 개념이 미약하며, 따라서 관료적인 요소가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사회운동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조직원과 비조직원의 구분이 불분명할때가 매우 많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사회운동에는 운동의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반면, 신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이미 언급한 대로, 조직이 미약하므로, 운동의 지도부의 역할도 상대적으로 미미하고, 운동에 있어서의 지도자의 역할도 비교적 적다고 말할수 있다.
    다섯째, 사회운동이 의존하고 있는 행동방식은 비교적 일정한데 비해, 신 사회운동은 행동양태에서 매우 다양함을 보인다.
    여섯째, 신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여러 종류의 독자적인 신 사회운동들 간의 필요에 따른 연합이 용이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존재한다 Raschke, Soziale Bewegungen , p. 52
    .
    일곱 번째, 사회운동은 집단적 이익 실현을 위해 사회전반의 변혁을 꾀하고 있는 반면, 신사회운동은 어떤 이념을 통해 사회전체의 변혁을 꾀한다기 보다, 자신의 현재 삶의 세계를 침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사안별로 투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사회운동은 사회운동보다 「계몽적 요소」, 「동원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반면 「자발성」은 사회운동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신율, 「한국 시민운동의 개념적 위상과 문제점: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제35집 2호, p. 166
    .
    여덟번째, 신사회운동은 위의 이유로 인해, 지역에 기반을 둔 소규모적 운동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아홉번째, 사회운동이, 유럽의 정당체계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권력의 장악과 계급관계의 변혁을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반면, 신사회운동은 그렇지 않다.
    열번째, 사회운동은 정치기구를 이용하거나 때로는 정치기구에 의존하는 전략을 전개하는 반면, 신사회운동은 기존의 제도 정치 기구를 이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사회운동은 제도정치권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사회적 변혁을 꾀하는 “개혁의 정치(politics of reform)”보다는 대중적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의 정치(politics of influency)”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신 사회운동은 현대 후기 산업 사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후기 산업 사회가 갖는 특징들, 다양하고 분화된 사회체제, 거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잇슈들, 그리고 빠른 사회적 변화와 그에 따른 잇슈의 빠른 변화등에 의해 사회운동(moderne soziale Bewegungen)은 그 속성과 모습을 바꾸어 완전히 새롭게 탄생되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신 사회운동은 “산업 사회의 발전론적인 패러다임의 붕괴”에 대한 대답이라고 정의되어질 수 있다 Schneider, Nobert F., Ewig ist nur die Veränderung. Entwurf eines analytischen Konzepts sozialer Bewegungen, Frankfurt am Main/Bern/New York, 1987, p. 43
    . 신 사회운동의 대표적인 예는, 환경 운동, 그리고 평화주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신 사회운동에 있어서, 좌, 우적인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으로는 그들의 특성을 조명하기 어렵다. 또한 위의 언급과 같이 신사회운동은 조직에 대한 의존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잇슈의 빠른 변화에 따라 조직의 이합집산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빠른 잇슈의 변화와 다양한 관심사등이 사회운동의 관료화된 조직으로 대응하고, 수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제기되어 질 수 있는 의문은 과연 신사회운동은 어떻게 운동의 양적 기반인 구성원들을 조직, 동원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위의 언급대로 신사회운동은 사회운동에 비하여 조직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운동에 있어 명망가와 같은 리더가 필요치 않다면, 과연 운동의 참여자를 조직적으로 동원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의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신사회운동의 특성중 신사회운동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이용한다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집단의 골격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Bonchek, S. Mark, Political Communication on the Internet,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97, p. 22
    ,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본고의 서두에 언급한바와 같이 사회운동에서도 「불만의 공유와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신사회운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 역할은 사회운동에서와 같이 「불만의 공유와 확산」이 아닌 「(사회운동에서의) 조직의 역할 대행」이라는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은 신사회운동에게 조직을 대신할 수 있는 「운동의 연결망」을 구축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운동의 연결망」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역적 차원의 운동에서 그 의미를 발휘 할 뿐 아니라, 전국적 차원의 “저항”이 필요할 때에는, 각 지역 차원의 운동을 순간적으로 뭉치게 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따라서, 지역적인 차원에서 운동의 연결망을 구축하고, 그러한 연결망을 안정시키는 것은 실제적인 차원에서의 신사회운동의 추진력과 지속성의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증명가능한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68년도 유럽을 휩쓴 학생운동에서 위의 사실이 발견되어 진다. 이러한 운동의 연결망은 60년대말부터 80년대 까지는 주로 지역의 서점이나 카페를 통해 구축되어 졌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매체인 인터넷이 연결망의 구축과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신사회운동은 그들 지역적 차원의 운동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중앙집권적 조직에 반대하고, 관료적 기구의 창설에 반대하며, 권위적인 대변조직 역시 반대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독일의 경우 신사회운동의 구조적인 발전은 중앙집권화라든지, 혹은 계급적인 관료구조, 그리고 조직의 대형화 방향과는 반대로 주제별로 세분화된 전문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로써 독일의 환경운동을 분석하자면, 관점 그리고 전문성에 입각한 운동의 세분화를 관찰할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쓰레기 문제라든지, 핵폐기물 문제, 에너지문제, 교통문제 그리고 핵무장에 관한 문제로 환경문제가 세분화되어 있고 이들을 다루는 운동단체들도 대체로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출판물, 인터넷등을 운동에 있어 하나의 연결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Roth, Roland, Lokale Bewegungsnetzwerke und die Institutionalisierung von neuen sozialen Bewegungen, in: Friedhelm Neidhardt(Hrsg.), Öffentlichkeit, öffentliche Meinung soziale Bewegungen, Opladen 1994, p. 415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운동은 중앙집권적 전국적인 조직에 의해, 그리고 신사회운동은 지역적 운동 연결망에 의해 운동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사회운동은 분명 개인의 역할이 부각되는 시민사회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시민운동이란 의미는 문자 그대로 시민의 자발적 주도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운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민운동은 특정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발생한 운동이라기 보다. 각 개인의 삶의 침해에 대해 저항하는 형태로 일어난 운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반핵운동, 반전 평화 운동, 여성운동, 대안 공동체운동등은 모두 시민운동이라고 취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위에 열거한 운동들이 모두 하나의 단체 혹은 하나의 운동에서 취급되어지는 다양한 문제의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2. 조직 차원에서의 한국의 “시민운동”과 유럽의 시민운동의 차이점

    한국의 시민운동과 유럽의 시민운동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조직이다. 조직적 차원에서의 양자간의 차이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한국 시민운동 단체의 조직이 방대하다는 점이다. 조직의 방대함은 본고의 전반부에서 소개한 신사회운동의 전형적이 특성, 즉, 조직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는 특성을 우리의 시민운동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본고는 신사회운동이 왜 조직에의 의존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하여 논한바 있다. 즉, 후기산업사회에서의 빠른 잇슈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이익침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규모의 관료적 조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바 있는데, 우리의 대표적 “시민운동”단체들이 이토록 방대한 조직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우리사회가 아직은 후기 산업사회로 진입이 않된 것을 의미 하던지, 아니면, 이들 단체들이 “시민운동” 단체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이들 단체를 조직적 차원에서 검토할 때 “시민운동 단체”라고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즉, 만일 한국이 후기 산업사회로의 진입이 않되고 있다고 할 때에는 역시 사회 변화에 따른 시민운동의 탄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두번째의 경우, 즉, 이들이 후기 산업사회에서의 “유사 시민단체”일 경우 역시 이들 단체들을 “시민운동 단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두번째, 방대한 조직은 조직 운영에 있어 관료화를 불가피하게 한다. 즉, 관료화는 방대한 조직운영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조직이 관료화되었을 때, 본래적 의미의 시민운동이 갖는 “자발성”에 입각한 “참여” 에 관한 의문이 제기 될 뿐 아니라, 의사 결정과정은 자연스럽게 「과두체제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과두」라는 용어가 함축하듯이 소수에 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조직적 차원의 문제는 중앙 조직과 지방조직과의 관계문제이다. 우선 경실련과 같이 중앙의 “지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지역 경실련의 경우 신사회운동이 갖는 “지역적 운동 연결망(지역 운동 네트워크)”적 성격보다는,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에 더욱 치중하는 형태의 “지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참여연대와 같이 지역 “자매 단체”의 성격을 갖는다 하더라도, 실제 이들 단체들과 서울의 참여연대의 관계는 신사회운동에서의 “지역적 운동 연결망”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역할과 사업에 대하여 논할 때 보다 구체적으로 논할 것이다.
    .

    네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한국 시민운동 단체들의 대부분이 명망가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연대의 경우 공동대표, 자문위원. 운영위원회등의 기관을 구성하고 있는 인사들중 학계인사, 변호사, 언론인등의 사회 지도급 인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77%를 상위하고 있다(http://www.pspd.or.kr). 이러한 상황은 경실련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 특히 지역 경실련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을 교수와 종교인이 각 지역의 공동대표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경실련의 경우 33개 지부에 총 127명의 공동대표, 집행위원장이 존재하는데, 이중 그 지역의 지역유지라고 할 수 있는 교수, 종교인, 변호사, 사업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85%에 이른다(http://www.cej.or.kr/park/jo_jik_do.htm). 이는 지역 경실련의 경우 명망가 중심의 운동이라는 성격이 더욱 강하게 대두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본고는 앞서 명망가 중심의 운동은 지도자가 운동의 지속성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사회운동의 주요한 특징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신사회운동에서는 이러한 지도자에 대한 의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신사회운동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익침해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이합집산이 빠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신사회운동은 어떤 이념을 통해 사회전체의 변혁을 꾀한다기 보다, 자신의 현재 삶의 세계를 침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사안별로 투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사회운동은 사회운동보다 「계몽적 요소」, 「동원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반면 「자발성」은 사회운동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의 통계적 수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시민운동”에는 절대 다수의 사회적 “지도층”이 포진해 있고, 이러한 상태를 통해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운동의 본래적 의미인 자신의 이익침해에 대한 저항이 동기인 “자발적 참여”를 통한 운동의 양적 기반확보 보다는 “계몽을 통한 동원”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지역 단위의 운동단체들이 지역 유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칫 운동의 순수성마저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조직의 방대함은 조직운영에 있어서의 재정적 기반확보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즉, 조직운영을 위해 상당 수준의 자금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에서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들은 우리의 “시민운동”이 유럽과 같이 사회적 변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성된 “본래적 의미의 시민운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3. 한국의 “시민운동”의 역할과 사업적 측면에서의 유럽 시민운동과의 차이점

    조직적 차원에서의 차이점은 사업영역, 즉, 활동 영역에서도 차이를 초래한다. 유럽의 시민운동과 한국의 시민운동의 차이점을 규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경실련 혹은 지역의 참여연대 “자매단체”들은 지역문제 보다는 전국적 차원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지역적 차원의 문제는 공통적으로 상당부분이 그 지역의 환경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구분이 가능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단위의 지부 혹은 자매단체의 문제점은 “지역으로부터 중앙으로”라는 신사회운동의 일반적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중앙 조직의 사업 영역에 있어서는 두 단체 모두 상당히 광역화된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광역화된 사업 형태는 두 단체 사업의 중복현상을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참여 연대의 의정감시쎈터의 사업 내용과 경실련의 의정 감시단은 그 사업내용에 있어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으며, 참여연대의 맑은사회만들기 본부 및 사법감시 쎈터와 경실련의 부정부패추방운동 본부 역시 상당부분의 활동 영역이 중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참여연대의 경제민주화위원회와 경실련의 경제정의연구소 역시 이러한 사업부분의 중복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외에도 경실련의 예산낭비 감시단과 참여연대의 납세자운동본부 역시 그 활동 영역이 중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경실련의 도시개혁쎈터와 참여연대의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및 아파트공동체연구소 역시 이러한 활동 영역의 중복성을 보여주고 있다.


    4. 유럽과 한국의 시민운동 간의 차이점에 대한 해석
    -한국의 특수성과 시민운동

    먼저 한국의 시민운동이 조직적 차원에서 이루어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우선, 조직도상의 조직은 방대하더라도 과연 상근 인원이 몇 명인가 하는 문제로 조직의 방대함은 검토되어야한다. 만일 조직은 방대하지만, 상근 인원이 소수라면, 이는 조직이 방대하다고는 볼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또 다른 문제점이 도출된다. 그것은 그럼, 왜 조직체계만이 복잡하고 방대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 시민운동이 명망가 중심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시민운동의 “위인설관”적 성격으로 인해 사실상 이러한 점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사회 분화적으로 볼 때, 아직 자발적 참여 보다는 계몽에 의한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는 앞서 이러한 사회적 미분화 상태에 대해 지적한 바있는데, 경제가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경제적 수준에 비해 우리사회는 여전히 미분화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점을 통해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한국의 특수성이 명망가 중심의 운동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산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러브호텔 반대 시민연대」를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소기의 목적 즉, 주거지역과 유흥지역의 철저한 차단과 분리를 실현하면 자연적으로 소멸될 수 있는 운동으로 전형적인 시민운동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인데, 이러한 운동에서 명망가는 찾아 볼수 조차 없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조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인적 구성원들 대부분이 사회운동 출신이라는 점이다. 즉, 한국의 경우 “전문 운동가”가 사회운동에서 곧바로 시민운동가로 전환되었다는 말인데,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운동방식을 사회운동적으로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한국적 특성은 운동 방법에서도 관찰되어지기 때문이다. 즉, 본고가 앞서 언급한 바와같이 신사회운동은 상당히 다양한 운동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우리의 시민운동은 아직 그다지 다양한 형태의 방식으로 목적 달성을 꾀하고 있지 않다. 바로 그 이유를 이러한 인적 구성의 연속성이라는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적 측면에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고 사료된다. 우선 서울 중심의 운동이라는 측면은 한국에 있어서 서울의 도시종주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경우 설사 지역적 차원의 문제라도, 대부분이 중앙부서와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는 한국의 지방자치가 서울의 도시 종주성 때문에 그 만큼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백화점식 사업은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행위를 하는 문화가 아직 우리에게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곧 시민운동 단체들의 활동 자금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이유에서 결국 다양한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아직까지 미분화된 사회에서 시민운동의 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왜 한국의 시민운동을 시민운동이라고 칭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본고는 앞서 신사회운동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시한 바 있다. 이 점은 한국의 시민운동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시민운동의 주요 구성원이 사회운동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실제에 있어 이점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념에 기반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측면은, 운동의 방식과 목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운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본고는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데올로기 부분이고,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을 보일 경우, 분명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반하는 사회운동과는 달라지기 때문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의 시민운동은 유럽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보임에도 하나의 시민운동의 형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사료된다.

    요약적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은 아직 과도기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도기라 함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아직은 시민사회라는 보편성보다 특수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명 한국의 시민 사회나 시민 운동은 특수성보다 보편성에 기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 시민 운동, 특히 다른 어떤 단체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하고 있는 경실련이 한국의 시민운동의 정착과 세계사적 차원에서의 보편적 운동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논해 보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IV. 결론
    -시민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앞서 언급한 바와같이 한국의 시민운동은 역할적 측면에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개념적, 위상적 측면은 진정한 의미의 시민운동으로 진입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개념적, 위상적 차원에서 과도기 상태의 시민운동이 역할적 측면에서는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실제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시민운동 단체는 아니더라도, 시민운동가들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하는 측면을 들 수 있다. 물론 시민단체에서는 시민운동 단체가 제도 권력화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가가 개별적으로 제도권력에 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시민 운동과 별개의 것으로 보아야 하며, 또한 제도 권력화된 사람들중 전문직 종사자들은 시민운동가이기 보다는 전문직으로써 제도 권력에 진입한 것이라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는 다음과 같은 맹점을 가지고 있다. 즉, 본고가 앞서 지적한 바와같이, 한국의 시민운동은 아직도 자발성에 입각하기보다는 계몽에 기반하고 있고, 따라서 명망가 중심 혹은 전문직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은 많을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들 전문직 종사자들이 시민운동에 참여했을 경우, 이들을 시민운동가로 분류하기보다, 전문직 종사자로 분류하면,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질적 근간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특성에 기반한다면,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전문직 종사자와 시민운동가는 결국 동의어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시민운동가들의 “개별적 차원”의 제도정치 권력으로의 진입을 “개별적”이라는 미명으로 덮어버린다면, 자칙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정치 엘리트 충원을 위한 중간 과정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될 경우, 시민운동이 우리사회에 기여했던 중요한 개혁의지들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고, 또,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도 증가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들이 대두하게 되면, 아직 과도기에 머믈고 있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과도기를 벗어나지 못한채 왜곡과 파행적 행태의 운동으로 전락하게될 위기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은 문자 그대로 시민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끌려가는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 역시 순수해야 한다. 물론 결과가 동기를 추론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하지만, 만일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을 위해 시민운동에 몸담았다면, 시민운동의 본연의 기능, 즉 정치, 사회, 그리고 자본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 비판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이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때, 진정한 「제도적 차원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시민운동의 지향점 역시 “체계(System)”에 맞추어져야 한다. 즉, 정치적 현상을 인격화해서, “깨끗한 인물”을 통해 개혁을 “깨끗한 사람” 중심으로 이끌기 보다는, 어떤 사람이 정치에 몸담아도 “어쩔 수 없이” 깨끗한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체계를 구축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를, “사람을 통한 정치의 정화”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이는 진정으로 시민운동이 지향해야할 목적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은 물론, 한국 정치문화의 병폐중의 하나인 정치의 인격화, 그리고 국가주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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