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老-老케어'
2015.06.05.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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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핀란드)=오현석 특파원 soci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요코하마(일본)=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김경화 기자 peac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원문보기-> senior.chosun.com 2011.01.14
기획특집6_시니어 보금자리.pdf
의원연수보고서_북유럽.pdf
지난해 12월 31일 밤, ‘로푸키리’ 입주자들이 2010년을 떠나 보내며 축배를 들고 있다.
노인들은 “가족 같은 이웃들이 보살펴주니 매일 걱정 없이 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현석 특파원
본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30대 이상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압도적 다수(76.4%)가 "80대 이후 내 집에 나 혼자 혹은 배우자와 단둘이 살겠다"고 했다. 하지만 80대 이상 노인 중에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건강도 장담 못한다. 요양원에 가지 않고 '내 집'에서 버티려면 살림 거들어주고 건강 챙겨줄 일손이 필요하지만, 돈으로 해결하려 하다간 개인도 국가 재정도 거덜나기 쉽다. 그래서 건강한 노인이 허약한 노인을 챙기며 공동체를 이루는 '노노케어'(老老-care) 시스템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핀란드-당번제로 가사 해결하는 노인 전용 아파트 '로푸키리'] 로뿌끼리
노인끼리 세운 '내 집'… 모든 일에 똘똘 뭉쳐 도와…
식사·청소·빨래·건물 관리, 입주자들이 자력으로 해결
'로푸키리'(Loppukiri·마지막 전력질주).('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도서에는 '로뿌끼리'로~)
2006년 4월, 핀란드 노인 73명이 헬싱키 시내에 58가구가 살 수 있는 7층짜리 노인 전용 아파트를 짓고 붙인 이름이다. "시설은 아무리 좋아도 시설일 뿐, 노인이 끝까지 '내 집'에서 버티려면 노인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6년 넘게 똘똘 뭉쳐 발품 판 성과였다.
'후랏토'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일본 노인들. 속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 외로움을 달랠 말벗이 필요한 이들에게
후랏토는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정(情)’을 나누는 공간이다. /요코하마=민봉기 기자 bongs85@chosun.com
2010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밤 9시, 입주자 50여명이 이곳 로비에 모여 기운차게 와인잔을 부딪쳤다.
"휘배 우타 부오타(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고령자 92세, 평균 연령 72세. 시르카 밍켄(Minkkinen·68)씨는 "노인끼리 산다는 점은 같지만, 수동적으로 돈 내고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요양원과 달리 로푸키리는 엄연한 '내 집'"이라고 했다. 식사·청소·빨래·건물 관리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노인들끼리 협동해서 해결한다는 뜻이다.
입주자들은 매주 월~금요일 오후 5시 공동 식당에 모여 다 함께 저녁을 먹는다. 입주자들이 6개조로 나눠 매주 돌아가며 밥을 짓고 세탁실·관리실·사우나·체조실·회의실 청소도 같은 요령으로 해결한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지 않는 한 요양원으로 옮기지 않고 이웃에 의지해 계속 이곳에 산다.
로푸키리는 노인 복지 선진국인 핀란드에서도 최신 모델로 꼽힌다. 냉전 종결로 이웃한 구소련이 몰락하면서 핀란드 경제는 1990년대에 극심한 불황을 겪었고, 노인 자살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대안이 로푸키리였다.
2000년 마르야 달스트롬(Dahlstrom·77)씨 등 갓 은퇴한 할머니 10여명이 "시설에 가지 말고 노인 공동체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헬싱키시에 "시유지를 염가에 임대해달라"고 요청하자, 노인 자살로 골치를 앓던 시청에서 선뜻 땅을 내줬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아파트'가 생긴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60~80대 노인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노인들은 주택조합을 설립해 아파트를 세웠다. 호텔처럼 1층과 꼭대기층에 공용공간을 넣고 2~6층에 살림집 58채를 배치했다. 입주금(56㎡·17평형 2억5500만원)도 시가보다 저렴했다.
가사를 분담한다는 실질적인 목적 외에도 로푸키리에는 '이웃의 온기'와 '활력'이라는 장점이 있다. 우체국에 다니다 은퇴한 입주자 헬리 스텐발(Stenvall·64)씨는 "외로운 독거노인들이 우체국 창구에 와서 하염없이 신세 한탄할 때마다 속으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면서 "이웃과 교류하는 공동체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로푸키리에 들어왔다"고 했다.
입주자들은 합창단·요가클럽 등 15개 동아리를 조직했다. 문학클럽은 지난해 공동 문집을 냈고, 연극클럽은 전문극단의 도움을 받아 극장에서 공연했다. '재능나눔' 활동도 한다. 최고령 할머니(92)가 소말리아 이주여성을 불러 수영을 가르치고 대신 영어를 배우는 식이다. 올해 목표는 공동주택을 짓고 싶어하는 다른 노인들을 도와 헬싱키에 '제2의 로푸키리'를 짓는 것이다.
[일본-아파트 공동식당으로 밥 굶는 노인 없앤 '후랏토 스테이션 드림']
주민들이 말벗하며 식사… '실버단지' 구심점 돼
1970년대 초반, 일본 요코하마 도심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주택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 '드림하이츠'가 완공됐다. 입주자 2300세대는 대부분 어린애를 키우는 20~30대 부부였다. 이곳 놀이터에서 참새처럼 짹짹거리고 놀던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직장을 잡으며 차례로 동네를 떠났다. 2011년 1월 현재 드림하이츠는 전체 주민 25%가 노인, 노인 중 80%가 독거노인인 '실버 단지'다.
주민 시마자키 교우코(島崎共子·70)씨는 "'누군가 노인 문제를 책임져 주겠지'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가 서로를 돌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북 김제시 황산면 할머니들이 경로당을 개조한 살림집에 모여앉아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마을 할머니들은 도시에 사는 자식들 집에 올라가는 대신 살림을 합쳐 고향을 지키기로 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2005년, 시마즈 레이코(島津禮子·76)씨 등 동네 할머니들 10여명이 한데 뭉쳐 단지 상가에 있는 빈 약국(33㎡·10평)을 개조해 '후랏토 스테이션 드림'이라는 문패를 걸었다.
'후랏토'는 '부담없이 들른다'는 뜻이다.
시마즈씨 등 60대 이상 운영진들이 40~50대 주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삶은 무조림, 달걀샐러드, 미역·두부를 넣은 된장국 등을 주민 누구에게나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점심은 400엔(5600원), 음료는 250엔(3500원)이다. 거동이 불편해 밥 굶는 주민, 외로움이 사무쳐 우울증 걸리는 주민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11년. 후랏토는 주민들 삶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부인이 유방암으로 사망한 뒤 혼자가 된 야마구치 츠네오(山口秩男·70)씨는 "집에선 혼자 쓸쓸히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지만, 이곳에선 또래 말벗에 둘러싸여 균형 잡힌 점심·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대장암에 걸렸다 완치된 그는 후랏토 부이사장을 맡은 시마즈씨를 가리키며 "우리 엄마나 마찬가지"라고 농담했다.
식당 겸 사랑방 역할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운영하는 각종 복지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연락사무소' 역할도 한다. 성공 사례로 입소문을 타면서 중국·타이완·한국은 물론 도미니카공화국에서도 견학하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운영비는 월 25만엔(약 350만원)이다. 주민들은 정부에 손 벌리는 대신, 직접 벌어 충당한다. 후랏토 벽을 미술 전시 공간으로 빌려주고 받는 대관료(2주 3000엔·4만2000원), 전시작품을 판매하고 받는 수수료(판매가 10%) 등이다. 소소한 '기부'도 많다. "혼자 먹기엔 밥을 너무 많이 지었다"며 밥을 가져오는 주민도 있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라며 야채 바구니를 안기고 가는 주민도 있다.
시마즈 부이사장은 "처음엔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운영진=수혜자'가 됐다"면서 "노인 복지는 결국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경로당을 살림집으로 개조한 김제 그룹홈 '수의제']
평생 살아온 동네이웃과 함께… "외로움 없어요"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지난해 12월 8일, 전북 김제시 황산면 진흥리에 위치한 경로당 '수의제(修宜齊)'에서 구성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경로당 거실에서 김점순(72)씨가 노래 한 곡을 뽑아내자 박수소리와 함께 까르르 웃음소리가 번졌다. "앙코르! 앙코르!"
동네 노인들이 모여 노래도 부르고, 고구마도 삶아 먹고, 고스톱도 치는 사랑방인 이곳은 특히 홀몸이 된 할머니 17명에게는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우리 집'이기도 하다. 95세 왕언니부터 72세 막내까지 한 세대가 차이가 나는 셈이니, 딸뻘인 할머니들이 엄마뻘의 할머니들을 돌보며 오순도순 산다. [출처]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老-老케어'/첨부파일|작성자 되돌림
수의제가 문을 연 것은 지난 2006년이다. 김제시청은 국내 처음으로 동네 마을회관·경로당 2곳을 개조해 홀로된 노인들이 평생 살아온 동네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정든마을 그룹홈(한울타리 행복의 집)'을 만들었고, 수의제가 그 1호 그룹홈이다.
이건식 김제시장은 "농촌 지역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고독사나 노인 안전 등에 대한 우려가 컸다"며 "건강한 노인들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며 모여 살면 서로 보호자가 될 수 있고, 도시에 나가 있는 자녀들도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4년째 살고 있는 황무자(76)씨는 "혼자 살 때는 대화 상대도 없고 아파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에서 살게 되면서 서로 챙겨주고 의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수의제는 김제시에서 지원받는 경로당 난방비와 그룹홈 운영비(연간 300만원)로 전기료·수도세 등의 공과금을 해결한다. 황씨는 "동네사람들이 쌀·김치·채소 등을 가져다주거나 각자 기른 것을 가져다 먹으니 큰돈 들 건 없다"며 "함께 지내니 뭘 먹어도 맛있고, 뭘 해도 재밌다"고 했다.
김제시 그룹홈 제도는 시행 5년 만에 95곳으로 늘어 관내 1000여명 노인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김제시는 인구(9만4346명)의 24%(2만2332명)가 65세 이상 노인으로, 이 중 혼자 사는 노인은 6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남성노인을 위한 그룹홈은 아직 없다.
전국 농촌(읍·면) 지역에 홀로 사는 노인은 36만6809명(통계청·2005 인구주택총조사)에 달해 이같은 신개념 '노노(老老) 케어'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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