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성장" 새로운 기치 이면에 신자유주의 회귀 움직임
2014. 1. 19. 01:51ㆍ경제/다보스포럼 (세계경제포럼)
"포용적 성장" 새로운 기치 이면에 신자유주의 회귀 움직임
[줌인] 다보스포럼선진-신흥시장 구도 형성
1990년 이후 20년간 신자유주의 메카로 주목
글로벌 금융위기 땐 "자본주의가 고장났다"
통렬한 반성 이어졌지만 경기회복 타고 변화 조짐 한국일보 박주희기자 입력 2014.01.17 03:35
주요 경제이슈를 심층 소개ㆍ분석하는 '줌인(Zoom-in)'면이 신설됐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다보스 포럼입니다. 매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에는 정치경제분야 글로벌 리더들이 대거 참석해 세계경제흐름에 대한 강연과 토론을 벌입니다. 특히 내주 막을 올리는 올해 다보스포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 개막 연설을 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간 휴양도시 다보스. 상주인구라고 해야 1만 명 남짓한 소도시다. 하지만 매년 1월이면 전 세계의 별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글로벌 기업의 CEO부터 저명 경제학자, 취재인, 정치인, 각국 대통령까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가 된다. 다보스포럼으로 더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ㆍWorld Economic Forum) 때문이다. 호텔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그나마 숙박시설이 모자라 1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묵어야 할 정도다.
시작은 1971년, 현재 제네바 대학 교수로 있는 클라우스 슈밥 박사가 유럽 기업인들을 위해 만든 비공식 세미나였다. 유럽경영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이란 당시 명칭처럼, 첫 회의에는 유럽지역 기업인들과 경제ㆍ경영학 교수 450여명이 참석해 경영전략, 조직구성 등에 대해 토론했다. 다분히 친목모임 성격이 강했다.
다보스포럼이 전환점을 맞게 된 건 1980년대 중반. 민족감정에 영해갈등까지 겹쳐 오랜 세월 앙숙이었던 터키와 그리스는 1986년 전쟁 직전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지역 중재를 위해 경제인들은 두 나라 총리를 다보스로 초청했고, 결국 정상회담까지 성사됐다. 이를 계기로 다보스포럼에 처음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비슷한 무렵, 다보스포럼 내에선 '너무 유럽중심적이다'란 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7년 세계경제포럼으로 공식명칭을 변경하면서 유럽 이외 인사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 때부터 다보스포럼엔 '이념'이 형성됐다. 독일 통일, 소련 붕괴 등 냉전체제가 완전 붕괴되면서 세계 경제에 '동서(東西)간 경계'는 허물어진 대신 '선진-신흥시장 구도'가 형성됐다. 이 시점부터 다보스포럼은 자유무역과 시장경쟁, 세계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메카'가 됐다.
냉전이 끝난 1990년 전후부터 20년간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였다. 돌려 말하면 '다보스의 시대'이기도 했다. 매년 1월 다보스에 모인 글로벌기업 CEO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정치인들은 장벽 없는 무역과 규제 없는 시장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켠에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약 없는 자유교역과 시장경쟁이 인류 모두에게 풍요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 부자들만 배를 불린다는 논리였다.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에서는 세계사회포럼(WSF)이 처음 열렸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안티 다보스포럼'이었다. 이들은 '반(反)세계화' '반신자유주의' 모토 아래 국제금융기구(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현 글로벌 경제질서를 지탱하는 국제기구들을 비판하면서, ▦개발도상국 부채 탕감 ▦국제투기자본 규제 ▦빈부격차 해소 등을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에 귀조차 기울이지 않던 다보스포럼에 일대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2008년 리먼 사태 때문이었다. 규제 없는 금융자본주의와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만들어낸 이 재앙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다보스포럼 역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WEF측은 당황했고, 변화를 모색했다. 이듬해인 2009년 다보스포럼은 '위기 후 세계질서 개편'을 주제로, 금융시스템 개편을 집중 논의했다. 당시 포럼에서는 ▦은행 통제 ▦레버리지(부채) 규제 ▦경영진 인센티브 억제 ▦파생상품 판매제한 등 신자유주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회의장을 지배했다.
이후 2012년까지 다보스포럼은 혼란의 시기였다. 그 해 참석자들은 '대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이라는 주제아래 "자본주의가 고장 났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을 했다. '1%에 대항하는 99% 행진'시위대가 다보스를 점령한 그 해 포럼에서 슈밥 회장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성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며 "그 과제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화도 포함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다보스포럼에는 다시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조짐을 보이자, 다보스포럼은 '신자유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을 나타냈다. '포용적 성장'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걸기는 했지만, 방점은 양극화 해소나 규제 보다는 성장과 자유교역 및 경쟁 쪽에 찍혀 있었다.
'불굴의 역동성'이라는 주제 아래 진행된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유럽에 필요한 것은 긴축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주장했고,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역시 "유럽연합 정책이 성장지향으로 가지 못하면 유로존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유럽이 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로 성장을 제시했다.
오는 22~25일 열리는 제44차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세계의 재편: 정치, 기업, 사회에 대한 영향'이다. 역시 ▦포용적 성장 달성 ▦파괴적 혁신 도모 ▦사회의 새로운 기대 충족 ▦90억 세계 인구 부양 등 성장담론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스위스의 알프스 산간 휴양도시 다보스. 상주인구라고 해야 1만 명 남짓한 소도시다. 하지만 매년 1월이면 전 세계의 별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글로벌 기업의 CEO부터 저명 경제학자, 취재인, 정치인, 각국 대통령까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가 된다. 다보스포럼으로 더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ㆍWorld Economic Forum) 때문이다. 호텔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그나마 숙박시설이 모자라 1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묵어야 할 정도다.
시작은 1971년, 현재 제네바 대학 교수로 있는 클라우스 슈밥 박사가 유럽 기업인들을 위해 만든 비공식 세미나였다. 유럽경영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이란 당시 명칭처럼, 첫 회의에는 유럽지역 기업인들과 경제ㆍ경영학 교수 450여명이 참석해 경영전략, 조직구성 등에 대해 토론했다. 다분히 친목모임 성격이 강했다.
다보스포럼이 전환점을 맞게 된 건 1980년대 중반. 민족감정에 영해갈등까지 겹쳐 오랜 세월 앙숙이었던 터키와 그리스는 1986년 전쟁 직전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지역 중재를 위해 경제인들은 두 나라 총리를 다보스로 초청했고, 결국 정상회담까지 성사됐다. 이를 계기로 다보스포럼에 처음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비슷한 무렵, 다보스포럼 내에선 '너무 유럽중심적이다'란 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7년 세계경제포럼으로 공식명칭을 변경하면서 유럽 이외 인사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 때부터 다보스포럼엔 '이념'이 형성됐다. 독일 통일, 소련 붕괴 등 냉전체제가 완전 붕괴되면서 세계 경제에 '동서(東西)간 경계'는 허물어진 대신 '선진-신흥시장 구도'가 형성됐다. 이 시점부터 다보스포럼은 자유무역과 시장경쟁, 세계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메카'가 됐다.
냉전이 끝난 1990년 전후부터 20년간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였다. 돌려 말하면 '다보스의 시대'이기도 했다. 매년 1월 다보스에 모인 글로벌기업 CEO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정치인들은 장벽 없는 무역과 규제 없는 시장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켠에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약 없는 자유교역과 시장경쟁이 인류 모두에게 풍요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 부자들만 배를 불린다는 논리였다.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에서는 세계사회포럼(WSF)이 처음 열렸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안티 다보스포럼'이었다. 이들은 '반(反)세계화' '반신자유주의' 모토 아래 국제금융기구(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현 글로벌 경제질서를 지탱하는 국제기구들을 비판하면서, ▦개발도상국 부채 탕감 ▦국제투기자본 규제 ▦빈부격차 해소 등을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에 귀조차 기울이지 않던 다보스포럼에 일대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2008년 리먼 사태 때문이었다. 규제 없는 금융자본주의와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만들어낸 이 재앙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다보스포럼 역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WEF측은 당황했고, 변화를 모색했다. 이듬해인 2009년 다보스포럼은 '위기 후 세계질서 개편'을 주제로, 금융시스템 개편을 집중 논의했다. 당시 포럼에서는 ▦은행 통제 ▦레버리지(부채) 규제 ▦경영진 인센티브 억제 ▦파생상품 판매제한 등 신자유주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회의장을 지배했다.
이후 2012년까지 다보스포럼은 혼란의 시기였다. 그 해 참석자들은 '대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이라는 주제아래 "자본주의가 고장 났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을 했다. '1%에 대항하는 99% 행진'시위대가 다보스를 점령한 그 해 포럼에서 슈밥 회장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성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며 "그 과제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화도 포함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다보스포럼에는 다시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조짐을 보이자, 다보스포럼은 '신자유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을 나타냈다. '포용적 성장'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걸기는 했지만, 방점은 양극화 해소나 규제 보다는 성장과 자유교역 및 경쟁 쪽에 찍혀 있었다.
'불굴의 역동성'이라는 주제 아래 진행된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유럽에 필요한 것은 긴축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주장했고,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역시 "유럽연합 정책이 성장지향으로 가지 못하면 유로존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유럽이 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로 성장을 제시했다.
오는 22~25일 열리는 제44차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세계의 재편: 정치, 기업, 사회에 대한 영향'이다. 역시 ▦포용적 성장 달성 ▦파괴적 혁신 도모 ▦사회의 새로운 기대 충족 ▦90억 세계 인구 부양 등 성장담론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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