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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의 위기] “나라 도움 안받고 홀로서는 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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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의 위기] “나라 도움 안받고 홀로서는 게 꿈”

     

        

남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라에서 돈도 주고 일자리도 구해줘서 편하겠다고. 뭘 걱정이냐고.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수현씨(36·여)는 이런 소리만 들으면 피가 거꾸로 선다.

“하루 종일 발바닥이 갈라지도록 뛰어다니고 일했지만 결국 수급자가 될 수 밖에 없었어요. 창피하게도 생각했어요. 아파도, 돈이 없어도 동사무소 문턱 넘는 일은 죽기보다 싫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아이들을 생각해서….”

적어도 전씨는 그랬다. 기초생활수급자란 딱지가 싫었다.

3년 전 남편은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집을 나가 연락을 끊은 것이다. 사업이 부도났다. 당시 전씨는 임신 7개월이었다. 5살, 4살인 딸 둘도 있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친정 어머니의 친구가 안산시 초지동 빌라를 보증금 1백만원, 월 10만원에 내줬다. 그마저도 보증금은 친정 어머니의 쌈짓돈으로 마련했다. 친정식구는 다들 여유가 없었다. 전씨는 안 그래도 살기 어려운 친정 식구들에게 짐이 되는 게 두려웠다. 아쉬운 소리 한 번 못했다. “정말 단돈 100원이 없는 때도 있었어요. 애들은 과자 사 달라고 졸라대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과자 한 봉지 사줄 수 없는 사람이 무슨 어미인지.”

아이들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했다. 전자제품 부품공장에 다녔다. 하지만 전씨는 아이들 때문에 오후 6시면 퇴근을 해야 했다. 아침에 출근해 한 달 꼬박 일해도 받는 돈은 60만원. 그나마도 공장측은 야근을 못하는 김씨를 해고했다. 이렇게 한 두 달 일하다 그만 둔 공장만 여러 곳이다.

10원 한 푼이 아쉽다. 쉴 틈이 없다. 해고됐을 때는 부업을 했다. 자동차 부품에 들어가는 철사를 끼는 작업이었다. 한 개 당 1원도 채 안 됐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돌보고, 집안 일 하는 시간 빼고는 하루 4시간 자며 부업에 매달렸지만 한 달에 15만원도 못 벌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일자리도 부업 일감도 없는 날이 이어졌다. 전씨는 동사무소를 찾았다가 우연히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전씨의 얼굴이 몹시 상해있는 것을 보고 동사무소 직원이 면담을 했다. 우연히 수급자로 선정된 것이다.

수급자로 선정된 전씨는 삶의 희망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김씨는 현재 안산시 초지동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단기 노인보호센터에서 일한다. 여기서 받는 60만원과, 수급자 지원금까지 합쳐 한달 수입은 1백만원 선.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 딸은 방과 후 센터가 운영하는 ‘무료 학습 교실’에 다닌다. 7살난 딸과 3살된 아들은 안산시가 운영하는 어린이교실에 다닌다. 끼니를 걱정하던 옛날에 비하면 사정이 나아졌다.

하지만 전씨에게 삶은 여전히 ‘푸른 빛’은 아니다. 전씨가 사는 연립 빌라 단지는 요즘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커가는 딸들에게 새 옷 하나 사주고 싶지만 그 때마다 손이 떨린다. 옷에 신경 쓸 나이가 됐지만 대부분 얻어입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기 집이 가난하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두렵다고 했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사실 정부나 다른 분들에게 더 바라지는 못 하겠어요. 아이들도 커가는데 들어갈 데는 많고. 어쩌면 여기서 주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할 겁니다. 내년에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닐 거예요.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다짐도 생겼습니다.”

밥도 안 먹고 점심 시간을 쪼개 만난 전씨는 일하러 돌아가기 전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 수급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많아요. 당장 먹고 살 방편은 생길 지 모르지만,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깡그리 사라져요. 아이들이 수급권자라는 말이 뭔지 알기 전에 제 힘으로 서고 싶은 게 소망입니다.”

〈황인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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