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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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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의 강

이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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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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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유사 이래 보다 나은 삶, 보다 나은 사회, 보다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진력해왔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끝없는 모색이며 힘찬 발걸음이기도 했다. 누구는 그것이 진보를 향한 열망의 표출이라 했고, 비로소 문명에 이르는 도정이며 각성이라고 설파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변화와 혁신의 강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건너왔다. 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혁신은 더없는 불편함을 강요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현상에 안주하려 한다. 변화와 혁신은 낯설고 거칠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와 수구는 훨씬 더 인간적이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대체로 현실주의란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을 뜻한다. 이는 곧 우리네 삶이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영위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모름지기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사람들은 동시에 실용주의자이기도 하다. 실용주의란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당대의 사회적 과제에 대한 새로운 대응방법을 신속하게 모색하는 행동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보수나 진보 모두 변화를 모색하고 희구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다만 상황과 조건에 맞는 점진적 변화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일거에 뒤바꾸는 전면적인 변혁을 이룰 것인지 그 방법과 수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모든 개혁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개혁이란 본시 소수가 다수를 변화시키려는 시도인 까닭에 언젠가는 그 동력을 모두 소진하게 되고, 그 순간 개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혁명은 힘없고 잔약한 다수의 민중이 물리적인 힘과 폭력까지 동원해서 기존의 가치와 억압구조를 일시에 타파하고 그 사회가 원래 지니고 있던 잠재적인 역량을 일깨우는 일이다.

<모든 개혁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혁명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어느 쪽이나 절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혁신은 그 방식과 상관없이, 과거나 현재, 미래를 불문하고 늘 현재진행형이다. 미래는 실상 오래된 과거다. 이는 사상의 시간적 존재형식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은 시간적 존재형식일 뿐만 아니라 공간적 존재형식이기도 하다.

현실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함께 피고 지는 꽃일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함께 맞이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나간 날이나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고 진정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변화와 혁신은 이 모든 것들의 중심을 꿰뚫는 일관된 흐름이며 시대정신이다. 결국 변화와 혁신은 특정한 시대나 사회 구성원들의 바램과 요구를 일반화하고 사회화하는 과정이며 구체적인 실천방법이다.

그에 관한 논의는 어느 개인의 몫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모두를 아우르는 전체 구성원들 공통의 책무이고 동시대인으로서의 소명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회의 구축과 건설이 고대로부터 현대를 관통하는 우리 모두의 가치와 열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 위기는 현실적이라기보다 다분히 감성적이다. 그래서 아주 생소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이 위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시기에는 반드시 서로 다른 각각의 위기가 있었다.

<위기는 다시 와도 어김없이 사라진다> 

위기는 언제나 다시 찾아오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고 또한 어김없이 사라진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위기 또한 어떤 특정한 사안과 개별적으로 관계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과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일어나고 있는 까닭에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역시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위기는 그것과 당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례적이다. 그 이례적인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곧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려 한다. 이 같은 대처방식은 아무리 나쁜 수단도 올바른 결과만 낳는다면 얼마든지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악은 그저 악일뿐이다. 전쟁이 평화의 수단이 될 수 없듯이 그 어떤 경우에도 부당한 방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태는 지나간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을 수 없다. 같은 잘못을 반복할 뿐이다.

정치적 불안은 구체적 현실로서의 실제가 아니다. 다만 머지않은 장래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도래할 불행과 파탄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은 화급한 정서적 위기로 인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같은 위기감이나 의혹을 불식할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이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서 우리가 봉착한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절대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 극복할 수 없는 위기는 없다. 그것이 바로 위기의 본질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 없는 위기에 당면했지만 또한 반드시 그 위기를 극복했다. 인류의 지난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어떤 경우에도 역사는 절망을 용납하지 않는다. 위기는 끊임없이 도래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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