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스라엘의 농촌사회 구조는 그 취락형태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취락의 형태는 주로 농촌주민의 특성에 따라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데 동구 사회주의국가에서 이민해 온 사람들은 대부분 집단생활중심의 취락형태를 취하여 정착했고, 북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대개 전통적인 인습과 그들의 생활습성, 개성에 따라 집단적인 것을 취하지 않고 개별적인 생활과 사유재산제를 존중한 취락을 개발하여 정착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농촌의 취락형태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당초부터 다양하게 개발된 것이 그 특징으로 세계에서 이민해 온 이질적인 사상적 배경과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저들의 기호를 고려하여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농촌취락의 생성배경과 이들이 세운 4대 정착형태인 모샤바, 키브츠, 모샤브, 모샤브 쉬투피에 관해서 살펴보고, 이 중
모샤브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이스라엘의 지리와 기후 중근동 중에서는 가장 서구화된 나라인 이스라엘은 세계 각국에서 돌아온 유태인으로 구성된 나라인 만큼 각국의 요리, 풍속, 문화가 뒤섞여 있다. 이스라엘 개척 시대의 노래 중에서 트로이카의 멜로디가 있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생활 속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확립하려고 모색하는 키부츠가 있다. 조용함과 움직임, 유한과 무한, 전쟁과 평화, 현대와 고대, 언뜻 보면 모든 상반되는 요소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북쪽은 레바논, 동쪽은 요르단강을 경계로 요르단과 국경을 이루며, 남서쪽은 이집트, 서북부는 지중해, 최남단은 홍해와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 길이가 450km이고 동서로는 가장 긴 너비가 135km이며 총면적은 27.817㎢ 이다. 인구는 종교와 문화, 종족이 다른 약 500만명으로 구성비는 유대인 82%, 아랍인 14%, 기타 4%이고 도시에 90%, 농촌에 10%가 거주하고 있다. 또한 수도 예루살렘은 약 3천년전 다윗왕이 도읍을 정한 이래 유대인들의 민족종교의 중심지가 되어 왔고 1948년 이스라엘 정부가 세워지면서 이 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이 도시는 성스럽고 유대인의 존재와 영속의 의미와 희망을 주는 도시이다. 시리아와 국경인 골란고원에는 방목하는 소가 풀을 뜯고, 초원 아래쪽에는 갈리리 호수가 거울처럼 빛나고 있다. 갈릴리 호수주변에는 개척시대부터의 오래된 키브츠가 많이 점재해 있다. 중근동의 목가적 풍경이 있는 곳으로 티베리아에서 서쪽으로 가면 나사렛을 지나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인 예즈렐 평야가 나오고 밀과 목화밭이 펼쳐진다. 이스라엘 최대의 항구 도시 하이파에서 로마시대의 상업 중심지 텔 아비브에 도착할 때까지 이 길 옆으로는 계속 과수원이 이어지는데 이곳이
샤론 평야이다. 이 일대는 우계인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며, 건계에도 습도가 높아서 무덥다. 이곳까지는 녹음이 있고, 네게브에 들어서면 바위와
모래이다. 갈릴리 호수에서 그대로 남쪽으로 향하면 각각 3개의 다른 길을 통해서 이스라엘 최남단의 도시 에릴라트에 다다른다.
이스라엘 농촌취락의 생성과정과 배경 나라를 잃은 민족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유리방랑하다가 1800년대 말에 일어나 시온주의 운동을 통하여 세계 각처에 있던 유대민족이
단결조직되고 그 조직된 유대 민족기구가 유대인의 고국 팔레스타인에 이민을 보내고 그 이민 군들이 농업정착을 하여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 것이다.
1) 1차 이민군 기간: 1882-1903년 12년간, 이민자 수: 약 20,000-30,000명 1차 이민은 1881년 남러시아에서 주로 통치수단으로 실시된 유대인 대학살이 정점에 달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러시아와 루마니아에서
최초의 애국 시온주의 운동에 의해 시작된다. 이 이민군은 향토에의 정착을 이들의 부흥을 위한 최우선의 과제라고 생가하였다. 즉 유대국가를
건설하고 부흥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농업훈련을 위한 농장을 설립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농업정착의 기초를 닦았다.
2) 2차 이민군 기간: 1904-1914년 11년간, 이민자 수: 약 35,000-40,000명, 팔레스타인 총 유대인 수:약 85,000 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 발포아선언 뒤에 유대민족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애국 열혈청년들이 많았다. 2차 이민군은 세계시온주의자 기구와 노동자
및 사회주의자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비록 중산계층의 자손들이기는 했지만 노동자나 농민이 되기를 갈망한다. 최초의 복합영농촌들이 건립되었고
1908년에는 아인가님(ein gannim)의 노동자 정착촌과 키네렛(kinnereth)농장이 들어섰다. 이때부터 농업정착국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3) 3차 이민군 기간: 1919-1923년 5년간, 이민자 수: 불법이민 포함 35,183명 이들 역시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주로 팔레스타인에서 산업을 일으켜 공업화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이 시기에
있어서 대규모의 농업정착민을 수용하는 키브츠와 모샤브라고 하는 독특한 형태의 정착촌을 설립한다. 4) 4차 이민군 기간: 1924-1931년 8년간, 이민자 수: 81,613명 불법이민 포함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그들은 도시 중산층의 상인이나 장인들이다. 오늘날 대 도시인 herzliya등 도시건설에 기여 방직공업
등의 산업분야에 종사한다. 1차 이민 때의 단일생산농장(초기:딸기, 후기:레몬)과는 달리 복합농잡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공업도 소규모
작업장에서 공장들이 설립된다. 5) 5차 이민군 기간: 1932-1948년 17년간, 이민자 수: 366,061명 5차는 정부수립 이전의 가장 큰 규모의 이민이다. 세계에서 유입된 사람으로 1932년 후에와서는 큰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때에 이민이 절정을 이룬다. 독일에서 온 이들은 상당한 자금을 가지고 들어옴으로써 공예, 상업, 그리고 농업에도 발전을 가져온다. 5차 이민기간 중 농촌과 도시지역 모두 상당한 성장을 하였으나 새로운 형태의 농업부락은 미세한 발전을 했을 뿐이다. 이들이 들어오면서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민적사회는 굳건하게 조직되고 국가건설의 준비가 다져지게 된다.
이스라엘 4대 정착 형태 팔레스타인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농촌정착은 4가지 형태로
첫 번째가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하여 건설된 전통적 형태의 농촌 부락인 모샤바(Moshava)로서 19c후반기 20년간 팔레스타인 옛땅으로 돌아가자는 근대 시온주의 운동의 기수들로서 구성된 대부분 중년층의 중산계층정착민들에 의해 세워진 정주형태이다. 다른 3가지는 1차 대전이 반발하기 이전 10년간 농업노동자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온 젊은 개척자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집단농장(Kvuzah)가 노동부락의 형태로 발전된 최초의 부락이다.
모샤브오브딤(Moshav Ovdim)은 모샤브울림(Moshave olim)이라고도 하는데 각 가정은 독립된 농장과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마지막(Moshav shitufi)모샤브쉬투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최근에 건설된 것으로 부락구성원들은 모두 각자의 가옥을 가지고 있으나 농사에 관한 사항이나 경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하나의 집단적 단위로서 관리하는 경영하는 집단적 소규모 취락형태이다.
1. 모샤바(사유농촌부락 또는 지역)사적농촌 부락
모샤브는 팔레스타인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최초의 정착형태로 1880년대에 시작되어 1차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주로 개인적인 농업정착에 의해 이루어졌다. 모샤바는 대부분 정착민들이 개인의 사유토지에 건설한 것이라 볼 수 있고 농장의 경영이나 관리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이 중 토지 소유권은 소유주의 재정적인 상태에 따라 지역단위 여건이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들은 주로 복합적 영농보다는 수지타산이 맞는 단일영농을 취하고 있다. 토지소유권 중에는 부재지역인 경우도 있고 주요한 작목은 감귤, 포도가 중요한 생산품이다. 노동자와 관련하여 이들의 중요성은 농업노동자 조합을 구성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착촌의 형태는 모샤바라고 할 수 있다. 모샤바는 농촌소도읍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화되어 가는 농촌도읍으로 일부 농민이 개인 농장 형식으로 농토를 소유하여 농사를 짓는 취락을 말한다. 이들은 집단성이나 협동성이 조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결국 완전히 도시로 되어버릴 것으로 본다. 전국에 100여개 촌이 분포하고 있으며 도시의 발달로 점점 농촌의 특성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도시의 확장으로 농토가 거주지로 바뀌어 지면서 농민은 직업을 전환하고 있는 실정이다
2.키브츠(집단정착촌) 집단사회 토지 정착의 촉진을 위한 당시의 중요한 새 원칙은 공공소유권이 있는 대규모 농장으로서 두가지 형태가 제시되었는데 하나의 시온주의자 기구 소유의 국립농장으로 고용노동자에 의하여 운영되며 다른 하나는 노동자조합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대규모 농장으로서 노동자들은 연간 수익금의 배당과 함께 그들의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지불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립농장의 시험적 운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결과 키브츠라는 새로운 형태의 농촌취락을 형성하게 되는 기초가 된다. 다른 집단에 의해 재정주가 이루어져 데가니아라고 불리는 지역에 영구적인 정착촌을 건설함으로써 최초의 키브츠가 설립된다. 키브츠의 제도적 구조는 완전한 집단주의에 기초를 두었다. 키브츠 내에는 공공식당, 중앙문화시설, 유아원, 탁아소 및 중앙난방공급시설 등이 구비되었다. 각 키브츠는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관점에 따라 여러 개의 연합체를 결성하였다. 키브츠 회원으로 가입코자 하는 사람은 보통 1년의 실험기간을 거쳐 허용이 되며 키브츠내의 중요한 사안들은 선출된 위원회에 의해 지도되고 관리되며 감사된다. 일반적으로 키브츠는 개인재산보다 법인화 된 협동기업의 형태를 취하며 회원들은 키브츠에 모든 재산을 양도한다. (키브츠는 완전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농촌취락으로 생산, 판매, 구매 등을 공동으로 하고 있으며 사유재산제가 없이 공동운명체로서 구성된 부락이다. 키브츠는 전국에 230여개 촌이 있으며 작은 것은 50여 세대가 있으나 큰 곳은 1200여 세대로 구성된 부락도 있다.
3.모샤브(소규모 협동농장)협동농촌 모샤브 오브딤 또는 소규모 협동 정착촌은 크브짜의 창설에 뒤이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모샤브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건설되었으며, 모샤브의 사회, 경제적 구조는 초기 키브츠의 특징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형성되었다. 모샤브는 협동마을이다. 모든가정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며 살아간다. 동시에 모샤브는 매매, 물자의 수급 등이 협동으로 운영되는 농업 조직이다. (모샤브는 토지와 가옥 등 재산은 일체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나 생산, 구매, 판매 등을 협동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협동촌이라고도 부른다. 전국에 430여 개의 정착 촌이 있으며 키브츠 촌처럼 대규모 부락은 없고 대개 100여 세대 내외로 구성되었다.)
4. 쉬투피(집단 협동농촌)
모샤브 쉬투피는 협력모샤브란 의미로 키브츠와 모샤브의 특징을 통합한 정주형태이다. 최초의 모샤브 쉬투피는 케파르 힐림으로 1936년에 설립되었다. 이는 키브츠의 집단주의 요소와 모샤브의 지나친 개인주의적 요소를 지양하고 이 두 형태의 각각 유리한 특성들만을 골라 종합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모샤브의 가족단위를 계속 보존하고 키브츠의 생산방식을 택하였고 소비와 생산을 분리하였다. 갈릴리 저지대의 게파를 힐림과 갈보다 지역의 몰레뎃이 1936-1937년 사이에 건설된 최초의 2개 모샤브 쉬투피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제대군인들이 이러한 형태의 정착방식을 택한다. (모샤브 쉬투피는 키브츠와 모샤브의 장점들을 취합하여 만들어진 형태로 사유재산제도를 완전히 인정하여 재산소유권을 부여하고 있으나 생산과
판매를 협동이 아닌 집단성을 띄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토지는 공유로 하고 있으며 생산물을 분배하여 사유로 하고 있다. 생산품의 분배는 투입된
노동자 비율에 따라서 실시하므로 농업노동기업촌이라고 부른다. 전국에 약 70여 개 촌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국민들 간에 큰 인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크게 발전을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들의 공통적 원칙 1. 토지의 국유 원칙(이스라엘 정착존이 관리하는 토지의 일절을 국유로 하며 토지의 매매를 금지시켰다. 일절의 토지가 국유지이므로 사용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토지사용권은 상속되난 분할할 수 없게 되어 있다.)
2. 자가영농 원칙(지주농 제도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주민은 스스로 노동을 하며 노동력을 사거나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3. 균등소득 기회 원칙(모든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평균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협조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것은 모든 주민들의 생활이 비슷한 수준으로 존속되기를 바라는 뜻이다.)
4.협동체제와 상부상조의 원칙(이 같은 두 가지 특징은 사회구조에다 조직체와 개인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으로서 정착촌들이 개인적 생활을
지향하고 협동을 통해서 뭉쳐 일하고 질병이나 돌발적인 사고에 대비하여 서로 도와서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 하에 정착촌들은
운영 되어진다.
모샤브의 목적 농촌취락 원칙에 따라 정착주민의 경제, 사회, 문화의 제반조건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특수성이 있다.
1) 모샤브는 정착민들을 훌륭한 농부가 되게 하고 자가영농 아래 사유재산을 보장한다. 2) 회원들의 토지에 대한 권한은 회원이 되면 이 권리가 생겨나며 이는 협정서에 의해 보장된다. 3) 회원들의 생산, 판매는 모두 협동조직을 통해 실시된다. 4) 부락의 공공시설과 그 운영은 부락당국에 의해 관장되고 행정은 완전 자치제로 주민 총외가 최고의결기관이다.
특히, 모샤브의 원칙은 일반 이스라엘 정착촌들의 원칙과 대동소이한데 이것은 토지의 국유, 협동시장체제, 자가영농 그리고 상부상조 원칙이다. 그런데 최근 모샤브 사회에서 새로운 원칙을 하나 더 만들어 지금은 5대 원칙으로 바뀌어졌는데 그 추가된 원칙내용은 집단보증 및 집단책임이다. 모샤브촌의 조직은 크게 총회, 이사회, 운영위원회, 특별소위원회로 조직되어 있는데 특별소위원회는 전문분야별로 평균적으로 7개위원회가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조직을 통하여 부락의 모든 행사사항들은 회원들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처리하고 있다.
(모샤브의 토지소유와 분할) 모샤브는 전체가 하나의 법인체로 묶여 있고 절대로 매매될 수 없게 되어 있다. 개인적인 경작권 양도가 불가능하나 모샤브 법인체 이름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에 주민총회 결의에 따라 새 회원이 인수받을 수 있으며 이때 권리금조로 상당한 대금이 지불된다. 한편 농부가 자기의 직계자녀에게 명의 이전(상속)하는 것은 하나로 권리로 인정, 부친의 토지에 관한 모든 권리 의무를 승계한다. 토지는 평등하게 분할한다는 것은 반드시 토지의 면적에서 만이 아니고 토질이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 엄격하게 평등분할이라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여 균분하고 있다.
(농업생산) 새로운 취락이 창설될 ? 유대기구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현지에 나가 세밀히 조사하여 토질과 교통 그리고 시장성 등을 고려하여 적당한
작물재배진단을 내리면 이것을 모샤브 설립위원회에서는 일정한 농작물생산단지로 조성하게 되는데 모샤브는 대개 복합농장으로 유축농업을 하고 있다.
그렇기 ?문에 집집마다 몇 마리 유우, 양계, 과수원과 기타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자가영농과 농기계사용)
스스로 농사일을 전담해야 하며 여기에 부인과 자녀들의 도움을 받는다. 농번기 많은 노동력이 필요할때는 이웃이나 인근동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 노임노동 금지) 노동력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농업의 기계화가 촉진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스라엘 농업의 대형 농기계의 발달을 가져왔다. 마을에서는
이를 공동구입 소정의 사용료를 협동조합에 내게 되어 있다.
(협동구입 및 협동판매)
모샤브의 기본개념 중의 하나가 협동 구매이다. 모샤브의 생산자 협동조합은 전국적인 농산물시장조합인 (트누바)에 연결되었고 이 기구는
이스라엘 노동운동의 기간산업이 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농촌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정부와 모샤브 운동기구 그리고 농산물 시장조합인 트누바가
협동하고 있다.
(상부상조)
모샤브의 구성원은 자신의 노동력과 경제여건 등에 따라 생활수준의 차이가 있으나 협회에서 정한 일정수준의 생활을 보장 받고 있다. *의료보험: 히스타드루트가 세운 쿠파트 훌림의 자동적인 회원이 되어 의료혜택을 받는다. *긴급융자: 모샤브전체의 집단보증으로 은행의 융자를 받을 수 있겠으나 자기가 갚은 능력의 객관성이 결여될 경우에도 긴급융자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주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상호신용금융제도: 우리나라 새마을 금고와 마찬가지로 회원들에게 융자하여 주는 데 편리를 도모한다. *회원의 병고시: 다른 회원들이 윤번제로 병고로 일을 못한 농부의 농사일을 돕는다. 회원의 사망시에는 모샤브운영위원회에서 그 농부의 농사를 협조 관리한다. *농사보험 : 전국적 규모의 각종 보험에 가입되었다. 가축이 질병으로 죽으면 그 불의의 손해를 보상한다. *고참주민의 협조 : 새 정착민에게는 고참자들이 자진하여 협조하는 일이다. 자문과 적극적인 지도를 한다.
(대내 조직)
모든 모샤브촌은 농업정착민을 위한 협동조합에 가입되었고 지방행정기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부락행정 수행하고 있다. 모샤브촌은 완전 협동촌으로 1933년 이후 농부협동조합에 가입되었고 부락의 운영은 일반적으로 협동조합법을 준수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모샤브촌의 운영회원을 뽑아 위원회를 조직하고 경제, 사회, 교육문화활동 등 전문분야별로 전문위원회들을 구성하여
조직적인 운영의 묘를 살리고 있다. 그리하여 모샤브당국은 회원농부들에게 신용획득, 종자구입, 비료와 사료구입 그리고 생산물의 판매등을
협동조합기구를 통하여 돕는다. 뿐만 아니라 농기계 및 자동차 공동구입 활용, 그리고 공동작업장과 협동조합 매점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부락행정과 공동생활)
모샤브촌의 조직은 크게 총회, 이사회, 운영위원회, 특별소위원회로 조직되어 있는데 특별소위원회는 전문분야별로 평균적으로 7개 위원회가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조직을 통하여 부락행정, 교육, 사회문화활동, 회계관리, 세금관리, 2세들, 정당가입 관계와 같은 모든 행사사항들은
회원들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처리하고 있다.
(모샤브 운동체의 조직)
모샤브촌은 모샤브들 끼리끼리의 연합회가 결성되어 있어 모샤브 운동체로서 감독, 지도, 교육, 지원을 해주고 있다. 가장 큰 조직체인
트누아트 하-모샤빔을 비롯한 하포엘 하-미스락히, 하익후트 하-하클라이, 하오베드 하-시온이, 포알레이 아그다트 이스라엘, 헤루트, 히트아두트
하-이카림, 기타 무소속 등 총 349개의 촌드러이 7개의 연합체로 묶어 127,900명의 회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모샤브 운동의 지원기관들)
모샤브 운동을 지원해 주는 여러 기관들이 있어 이스라엘 농촌개발과 농촌 취락 건설을 적극 돕고 있는데 이들은 농업전반과 경제적인 면에서
협동하고 있다. 이들 대표적인 기관들은 모샤브 금고, 아인하이은행, 유대기구, 히스타드루트 등 많은 기관들이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각광을 받는 선전국으로 자리잡은 것은 유대인의 독특한 민족혼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조국광복에의 역사적 배경에서 나타난 시온주의 정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조국광복을 위해 이민해온 이주민들에게 다양한 취락형태를 개발하여 국민들 각자의 기호에 따라 정착촌을 건설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착촌의 형태는 집단농촌사회인 키브츠, 협동농촌사회인 모샤브, 그리고 집단협동농촌사회의 성격을 띤 모샬브 쉬투피촌이다. 이같은 농촌취락형태는 농촌사회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만이 적용되는 독특한 농촌정착촌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역사회개발, 특히 농촌지역개발이 괄목하리만큼 크게 발전했다. 이러한 이유는 유대인들 자신이 개발한 취락제도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잘 운영해 나갔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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