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운동권은 삼성을 쓰는가.
-대안사회
불편한 얘기가 될 수 있어서 가급적 안 쓰려고 했으나 역시 할 얘기는 좀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이 기회를 통해 글을 써본다.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첫째, 삼성은 우리에게 어떤 기업인가. 둘째, 우리는 삼성제품을 사서 써도 되는 것인가.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우리가 다들 아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그간 저지른 악행을 모르는 사람도 없으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삼성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에는 누구든 ‘NO'라도 대답하는 것이 맞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주변에서 삼성제품들, 특히 가장 눈에 잘 띄는 IT제품들을 사용하는 걸 많이 목격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스마트폰과 컴퓨터 같은 제품들이다. 사실 좀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피켓들고 삼성을 반대하고 삼성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데 저녁에 모여 식사를 하며 술잔을 돌리는 꽤나 친한 분들이 삼성 스마트폰을 거리낌 없이 꺼내보는 풍경. 이러한 모습에 다들 적응이 되는지 아니면 애써 서로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고 불편한 관계가 될까봐 말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불매운동을 하는 것과 실제 그 제품을 쓰고 안 쓰고는 별 관계가 없는 건지 아리송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좀 물어보는 편이다. 직설적으로 ‘왜 씁니까’ 라는 식으로.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좌우지간 본인이 삼성제품이나 삼성이라는 회사를 좋아해서 샀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직접적으로 통계 내본 적은 없지만 정말 의식해서 이것만은 피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거의 삼성제품을 사용한다고 보면 될 것 같고 적게 잡아도 60~70% 정도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사실 이 분들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 국민들도 삼성을 정말 좋아해서, 삼성을 동경해서 삼성제품을 사는 사람은 10%도 안 될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내가 서비스 계통에서 일을 하니까 알지만 거의 대부분은 브랜드 이미지와 사후관리 즉 A/S 때문이다. 특히 삼성의 A/S는 대한민국에서 거의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내가 일하는 회사를 비롯해 거의 모든 IT회사는 삼성을 모방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삼성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을 철저히 모방하는 것이며 아마도 대한민국 모든 기업의 고객 서비스 롤모델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삼성을 얼마나 앞서갔느냐 또는 따라잡았느냐가 서비스 경쟁력의 지표가 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기업 서비스의 사고 수준이다. 따라서 단순히 삼성이니까, 나쁘니까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허공에 메아리일 수 있다. 우리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나. 그런 현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우리는 삼성을 비판하더라도 그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와 서비스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서두에 말한 ‘삼성은 나쁘다’ ‘따라서 삼성 제품을 사지 말아야 한다.’ 는 이 타당한 인과관계는 굉장히 쉽게 허물어진다. 뭐 좌우지간 내가 손해는 아닌 것 같으니까 사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 내에서 이것이 앞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는 시민운동을 설명하는 하나의 기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풀어보고 싶다. 화가 나지만 개인의 의식과 도덕성에 책임을 묻는 건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한 두 번 정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분들도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가장 첫 번째로, 삼성불매운동을 하는 분들은 나 포함해서 일차적으로 이 문제를 시민운동 내부에서 의제화해야 한다. 거기서 우리가 주된 논의로 삼아야 할 것은 ‘왜 안 될까’가 아니라 ‘어디까지 될 수 있는가’이며 이 지점에 대한 폭넓은 자아성찰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운동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목적과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 싶다.
물론 그것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결론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우리 내부에서 ‘삼성불매’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자리 잡지 않은 이상 삼성을 이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삼성을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어떤 제도적으로 바로잡지 않은 이상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중적인 불매운동 밖에 없을 텐데 우리부터 삼성을 쓰면서 삼성반대 피켓을 내 걸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은 이상 우리는 여전히 소수 개개인의 의미 없는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운동에 있어서 그것만큼 재미없는 일은 없지 않을까.